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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16-1-13 새벽설교 -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눅4:14-30)

최민환2016.01.26 19:07조회 수 273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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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능력으로 살면(눅4:14-30)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성령의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때부터 성령충만을 받으셨고, 광야로 가실 때에도 성령의 이끌림을 받으셨고, 오늘 본문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로 가셨다고 나온다. 예수님은 성령의 사람이셨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 어떤 일을 할수 있는지, 어떤 삶을 살수 있는지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

 

■첫째,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 영향력있는 삶을 살게 된다.(14-15절)

본문 14절에“성령의 능력으로”라는 말씀은“성령의 능력을 입고, 또는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라고 다른 성경에 번역되었다./주님이신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은 상태에서 갈릴리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하필 갈릴리에서 활동하셨을까? 주목해야 할 점은“예수께서 멀리 멀리 다니시며 넓은 지역을 다니며 사역하신 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 지역에서만 활동하셨다.

 

갈릴리가 어떤 곳인가? 갈릴리지역은 남북으로 약 80km, 동서길이는 약 45km정도의 면적인데, 좀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나라 제주도보다 가로세로 10km정도씩만 더 큰 넓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사람들은 갈릴리지역의 유대인들을 유대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꼭 “갈릴리 사람”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같은 유대인이라도 너무나 가난하고,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저질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갈릴리사람”이라고 하면“가난하고 무식한 촌사람”을 뜻했다

 

.==> 예수님은 왜 예루살렘같은 사람 많이 모이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활동하지 않으셨을까? 유월절기간만 되면, 전 세계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의 모든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예루살렘으로 모이는데, 거기서 사역하면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전도하고 가르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공생애 3년간의 생애 중 대부분의 시간을 갈릴리에서 보내셨다./그런데 놀라운 것은, 마4:24-25을 보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졌다는 것이다. “수리아”는 “예수님 당시에 남쪽은 이스라엘, 북쪽은 소아시아(터키), 동쪽은 메소포타미아, 서쪽은 지중해연안을 포함하는 큰 지역”이었다. 갈릴리에서만 사역했는데, 예수님의 소문이 이스라엘을 넘어서 근방 나라에까지 퍼져 나간 것이다. 그래서 마4:25에 보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찾아와 예수님을 따랐다고 기록하고 있다.“데가볼리”는 '열개의 도시들'이란 뜻을 가진 이곳은 요단강 동편과 갈릴리 호수 남쪽에 이르는 지역에 위치한 헬라인 도시들의 연맹체를 말한다. 이곳은 당시 헬라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이방인들의 거점이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는 상당히 배타적이었다. 그런데 이곳의 이방인들조차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께 나아왔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단지 갈릴리라는 한정된 지역에서만 사역하셨지만, 그에 대한 명성은 지역을 너머 국경을 너머 온 천하에 퍼졌다.

 

==> 세례요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죠? 그는 요단강에 접한 유대광야에서만 사역했을 뿐, 이스라엘전역을 돌아다닌적이 없었지만,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방에서 바리새인을 비롯하여 모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우리가 예수님의 경우나,세례요한의 경우를 볼 때 알수 있는 것은, 환경이나 공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예수님은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에서 5천명을 모아놓고 설교하셨던 분이다. 환경과 장소에 영향을 받지 않고, 오히려 사방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삶이었다. 어떻게 이런 삶을 살수 있는가? 바로 성령의 능력으로 살 때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낭중지추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주머니속에 있는 송곳이라는 뜻이다. 뾰족한 송곳은 주머니속에 넣어둔다고 해도 결국은 삐져나오게 되어 있다. 재주가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 있던지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은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오히려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수 있다. ==> 그러므로 환경을 탓하지 말라.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에 마음 흔들릴 필요가 없다. 진짜 문제는 흙수저라는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지 못함이 문제임을 깨달아야 한다 .==>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 장소에 상관없이, 영향력있는 삶을 살게 된다.  환경을 탓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란다.

 

 

■둘째,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 사람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16-30)

본문 16-30절은 고향 나사렛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내용이다. 앞부분 16-21절은 예수께서 바로 은혜를 주러오신 분임을 뜻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22절-30절은 은혜를 일순위로 받았어야 할 나사렛사람들이 은혜받기를 거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은헤는 육신적으로 가깝다고 받는게 아니다./우리 생각에는 목사의 가족이 목사의 설교에 가장 은혜받을 것 같지만, 그렇지가 못하다. 왜냐하면, 친밀함이 경멸함을 낳기 때문이다./너무 잘 알기에 은혜에서 멀어지는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께서는 육신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의 배척, 거부, 그들의 분노에 대해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주님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는 그들의 비아냥거리는 평가에 상처받거나 요동하지 않으셨고, 그들의 거부와 분노에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그들의 은혜받지 못하는 모습을 지적하셨다.

 

왜인가? 성령의 능력으로 사는 사람은 사람의 평가에 목을 매지 않고, 하나님의 평가, 하나님의 인정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령의 능력으로 살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사람들의 말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다. 사람들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인생이 피곤하고, 곤고하고, 초라해질 수밖에 없다. 당당하지 못하다. 얼마나 불행한가? 성령의 능력으로 살지 못하면, 사람들의 반응에, 특별히 상대방의 분노나 거부에 민감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게 아니라,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된다. 하나님께 인정받기보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살지 못하면, 누가 뭐라고 한마디만 해도 마음이 요동친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살면, 마음에 깊은 강물이 흐른다. 그래서 누가 내게 돌을 던져도 깊은 강물에 돌을 던진 것처럼 조용하다. 무엇이든지 다 소화시켜 떠내려 보낸다. 성령의 능력은 내 마음을 깊은 강처럼 만든다.

 

여러분, 늘 말씀드리는 것처럼 신앙은 소화력이다. 성령의 사람은 모든 것을 소화시킨다. 남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남들이 나에게 손가락질을 해도, 나를 비방해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하나님앞에서 산다. 예수님처럼 성령의 사람으로 사십시오. 그래서 사람의 말에 민감하거나, 사람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움없이 당당하게 사는 성령의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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