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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인정받은 믿음(08년 2월 첫째주 설교)

두목사2008.03.01 15:22조회 수 1911추천 수 15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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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창세기 22장 1-14절
말씀제목 : 인정받은 믿음

시험이라는 단어가 성경을 보면 자주 나옵니다.  시험의 뜻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유혹(temptation)이라는 우리를 범죄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지 못하게 하는 시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길을 가지 못하고 죄를 범하고, 그래서 마음에 상처와 깊은 상처와 좌절을 있게 하는 유혹이 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유혹을 이기셨듯이 우리도 그 유혹을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시험은 테스트라는 뜻입니다.  학교다닐 때에 봤던 시험과 같습니다.  우리의 실력을 드러내고,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고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고난이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테스트 하십니다.  그래서 나의 인격에 신앙에 이런 문제가 있음을 알게 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테스트가 왜 필요하냐,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시험볼 때마다 가슴이 설래이고 기다려지지는 않죠? 우리는 시험을 좋아하지 않지만, 필요없다고 하지 않는 것은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외모로는 학교 성적을 알 수 없습니다.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에 전교 일등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웃으면 눈이 안보이고 얼굴이 찌그러져 있는, 흔한 말로 불량감자 였는데, 시험을 보면 괜찮은 감자인 것을 알게 됩니다.  시험을 통해서 실력을 알게 되는 거죠.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지,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주 어려운 것, 그것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앞에 나타나면 그 안의 믿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가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 건드리면 폭발할 수 밖에 없는, 불신앙이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그 부분을 하나님이 건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험의 내용이 2절에 있습니다.  이삭을 모리아 땅이라는 곳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대단히 무리한 요구이고, 아브라함이 순종하기 매우 어려운 요구입니다.  왜냐면,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생이고, 그의 꿈이고 비전이고,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이삭을 제물로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가능하냐는 것입니까?  게다가 합당한 이유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식들을 때리면 왜 때리느냐고 화를 내는데, 그것을 납득시켜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이유에 대해서 아무것도 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번 요구는 그 이전에 경험해왔던 하나님의 방식과 전혀 다르고, 하나님의 성품과도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자식을 바치면 얼마나 비윤리적인 것이 되겠습니까?  “드디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기더니 노망이 들어서 자식을 죽이는구나”라고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 이삭은 약속의 자식입니다.  자신의 소중한 아들일 뿐만 아니라, 이삭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씨가 나와서 이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도저히 순종하기 어려운 시험인 것입니다.  

자,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따로 그 뜻을 이루시고, 저는 이제 이삭을 데리고 잘 살겠습니다”라고 불순종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이스라엘 민족은 수없이 반복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그 삶을 조금만 어렵게 하면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으며,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내 생각대로 내 원대로 살겠다는 것이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 속에서 어떻게 합니까?  그는 하나님께 따지지 않습니다.  납득해주길 바라지도 않고 질문하지도 않고, 그냥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모리아산으로 떠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 오면 납득할 때까지 내 생각이 바뀔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보면 내일 당장 출발하라는 이야기도 없는데, 아브라함은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떠납니다.  조금 더 데리고 있고 싶고, 납득 될 때까지 며칠 더 기다려 볼 수도 있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를 보면, 하나님께서 내게 이것을 원하신다는 것을 듣고 깨닫습니다. 그러면 바로 행해야 하는데,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오늘은 빼고 내일부터, 이번주만 끝내가 다음주부터…하고 미루다가 결심이 약해지고 하나님의 음성이 약해지고 결국 변화되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지체하고 시간을 미룰수록 실행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순종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밤새도록 기도를 했건 고민을 했건 간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떠나간 것입니다.  
우리는 소돔이 멸망할 때의 롯을 알고 있습니다.  천사가 롯에게 소돔성에서 떠나라고 했으나 뭉기적거리고, 하나님이 끄집어 내실 때까지 지체하였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순종의 첫 번째 비결은 바로 지체하지 않는 것입니다.  납득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내 생각을 바꾸실 때까지 기다리면 우리는 순종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을 보면서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 도착할 때까지 사흘이 걸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3일 동안 이삭과 함께 걸어가면서 얼마나 고민했겠습니까?  아마 아브라함 평생에 가장 큰 고민과 갈등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이 3일은 그에게 인내의 시간이었습니다.  인내 없이는 순종할 수 없습니다.  인내하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서는 불순종의 삶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습니까?  3일이라는 긴 시간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주셨습니다.  바로 옆 동산에서 기도하라고 하셨다면 좀더 쉬웠겠지만, 아브라함은 3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의 뜻에 반하지 않고 순종하면 잘 이겨냈습니다.  

3일이 지나서 모리아산에 잘 도착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무엇을 합니까?  5절을 한번 봅시다.  종들을 산 아래에 기다리게 합니다.  왜 종들을 아래에 두었느냐면, 산 정상에서 이삭을 잡으려 하면 종들이 “주인이 노망이 들었구나” 생각하고 막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들의 핑계거리, 장애물을 미리 제거한 것입니다.  
사라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왔습니다.  사라가 아들을 사랑하여, 나를 먼저 죽이고 데려가라고 했을 수도 있었고, 그러면 아브라함은 사라를 핑계로 하나님의 명을 순종하지 못햇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험이고, 자기가 건너야 할 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들 이삭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은 장작을 지고 갈 만큼 장성한 어른이었기 때문에, 이삭에게 이야기하면 중간에 도망갈 수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가능성과 장애물을 미리 제거하였습니다.  
그렇게 장애물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아브라함의 변명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모든 장애물들을 미리 제거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변명이 너무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순종은 없고 변명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내가 순종함에 방해되는 것이라면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순종의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장애를 제거하고 다시 모리아 산으로 올라갑니다.  자신은 불과 칼을 들고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삭에게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제사를 드리러 가는데, 장작은 있는데 제물이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연로하여 깜박하셨나 싶어 아버지에게 이를 상기시키려 합니다.  아버지, 제사드리러 가는데 왜 재물이 없나요?  그 말을 듣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떠했을가요?  이삭은 아버지가 자신을 재물로 바치려하는 것을 전혀 생각못하고 있는데, 그에게 배신과 실망을 주어야 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갑니다.  
그 순종의 길을 가는 아브라함의 마음, 믿음, 속셈은 무엇이었을까요?  5절 후반부에 나타나 있습니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그동안 너희는 나귀와 기다리고 있어라.”  가서 이삭을 제물로 드리면 혼자만 남는데, 둘이 함께 돌아온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그는 분명히 이삭을 제물로 바칠 결심을 했는데, 그럼에도 돌아올 때에 함께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삭을 되살려주실 것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명대로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고 죽여도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갈등과 고통의 길이었지만, 아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게 되지만, 이 아들을 통해서 많은 자손을 주시고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며, 그 믿음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순종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믿음이 있을 때에 순종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산에 올라가서 단을 쌓고 장작을 쌓은 후에 이삭을 묶어 제단에 올려놓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신을 묶어서 제단 위에 올려놓으려 하는데 이삭이 가만히 있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삭이 바보여서 가만히 있었을까요?  아브라함이 자신에게 하나님이 너를 번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수도 있고, 이야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이삭이 순종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기 위해 칼을 번쩍 들었을 때에, 천사가 아브라함을 급히 부릅니다.  이 장면을 렘브란트가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그림 속 이삭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가득하고, 아브라함의 얼굴에는 반드시 행하리라는 결단과 의지가 보이고, 한쪽에는 천사의 황급한 모습을 그렸습니다.  만일 천사가 막지 않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그대로 죽여서 번제로 드렸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아브라함은 통곡하고 울고, 이삭은 분명히 부활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며 하나님께 순종할 것인지, 이삭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불순종할 것인지 시험하신 것입니다.  이 시험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쪽을 선택했고, 그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얼마나 멋진 아브라함입니까?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이 시험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이전에 약속했던 것을 꼭 이루시겠다고 재확인 해주십니다.  그런데 ‘여호와이레’ 주님께서 보신다, 준비하신다는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수양 한 마리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이 숫양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이 제사를 드리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이전에 드렸던 수많은 제사와는 다른, 큰 감동이 있는 제사였을 것입니다.  내가 죽었어야 할 자리에 숫양이 대신하고, 내 아들이 죽는 대신에 숫양이 대신 죽어 제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굉장한 감격과 감동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제사가 무엇입니까?  나를 대신해서 어린 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을 제물로 대신 드린 것입니다.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은 이 예배을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를 구원하신 감격이 순종한 자에게 시험을 통과한 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순종의 길을 걷는 자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것을 잘 알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로 선교하길 원했는데,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로 가라고 하셔서, 자신의 뜻을 꺽고 하나님 지시대로 갔습니다.  간 곳이 빌립보 였습니다.  회당이 없어서 강가로 갔는데 그곳에서 루디아를 만나게 되고, 루디아가 예수를 믿게 되고, 그곳에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이 빌립보 교회가 유럽의 전진기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지시대로 나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장소, 선교지, 전하는 사람, 교회가 세워질 장소 그 모든 것을을 준비하시고 공급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호와이레로 준비해주시고 공급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순종으로 인해 복을 주시고, 믿음이 드러나게 하시고, 온 인류의 믿음의 조상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실 때에 그 시험을 통과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지금 사는 곳은 어디입니까, 가는 곳은 어디이십니까?  여러분이 이 모리아산의 정상에 서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장소,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하는 장소, 그래서 하나님의 여호와이레를 경험하는 장소,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경험하는 장소, 이 모리아 산 정상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감격의 찬양을 드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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