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출25:23-40
제목: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려면
▶첫째,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려면 <항상 말씀으로 충만>해야 한다.
사실 떡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떡상의 존재 이유는 그 떡상 위에 놓이게 되는 <진설병 떡>에 있다. 진설병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 떡으로서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이다. 진설병의 뜻은 히브리어로 “얼굴의 떡”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진설병을 “임재의 떡”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은 이 떡을 제사장이 먹게 하셨다. 이 떡을 먹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것, 즉 <하나님과의 교제>를 뜻한다. 그래서 “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30절)는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신약시대에 우리에게 <살아있는 임재의 떡>을 보내주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요6:35)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먹는 것은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믿음을 왜 먹는 것으로 표현했을까?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요6:57/공동번역성경) 신앙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먹어야 할 이유는,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기 위함>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까닭은 우리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살기 위함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날마다 먹고 마셔야 한다.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는 시간은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시간이다. 떡은 감상용이 아니다. 떡은 사색용이 아니다. 사색하며 분석한다고 배부르는 것이 아니다. 떡은 먹어야 한다. 먹어야 양식이 되고, 힘이 된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말씀의 시간이 우리의 힘이요, 양식임을 믿으라. 생명의 떡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회복시키도록, 말씀으로 가득 채우라.
▶둘째,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려면 성령의 인도에 민감해야 한다.
등잔대는 순금 한달란트, 즉 34킬로그램의 순금을 쳐서 만든 것이다. 등잔대는 살구꽃의 형상(33절)인데, 살구꽃의 의미는 “깨우다, 자각하다. 경계하다”이다. 즉 등잔대의 역할은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등잔대는 <세상을 밝히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내가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성도는 빛되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살 수 있다. 성막 안에는 창문이 없다. 그래서 캄캄하다. 등잔대가 없으면 성막 안은 캄캄해서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순금등잔대의 목적은 <앞을 비취게 하는 것>이다.(37절) 등잔대 앞에는 떡상과 분향단이 있다. 진설병은 말씀을 의미하고, 분향단은 기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빛이 없으면 진설병도 안 보이고, 분향단도 안 보인다. 주님이 빛을 비추시지 않으면 말씀을 읽어도 깨닫지 못한다. 주님이 빛을 비추시지 않으면 올바른 기도를 하지 못한다. 빛 되신 주님이 인도해주셔야 모든 것을 제대로 할 수가 있게 된다. 제사장들은 성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 외부의 빛(육신의 생각)이 차단된 상태에서, 오직 일곱 등잔으로부터 비춰지는 빛(성령의 조명하심)만을 필요로 했다. 본문에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 중 하나가 “줄기와 연결”이다. 줄기와 가지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줄기는 그리스도 예수를 뜻하고, 가지의 등잔은 일곱 교회 곧 <하나님백성>을 뜻한다. 즉, 등잔대의 연결은 곧 <성도가 주님께 붙어있는 삶>을 뜻한다.(요15장) 사람은 똑똑한 것 같지만, 한계가 있다. 사람의 지혜로는 인생의 길을 밝힐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야 한다. 주님의 통치하심 안에 살고자 한다면, 말씀으로 충만하게 채우되, 늘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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