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선택권이 내게 주어졌을 때
본문: 출애굽기 22 : 16 - 31
출애굽기 22장은 크게 두 가지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배상에 관하여’ 두 번째는 ‘도덕에 관한’ 규정들을 선포합니다.
이 도덕에 관한 규정 중 네 가지 규정을 가지고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 네 가지 규정은
첫 번째, 처녀를 꾀어서 동침한 경우
두 번째, 반드시 죽여야 할 세 종류의 사람 또는 죄
세 번째,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위한 법
네 번째, 가난한 자에 관한 법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들을 보며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네 가지를 하나로 이어주는 공통점이 한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처녀가 꾀임을 당해 동침을 한 경우에 대한 말씀, 꾀임에 속아 동침을 한 여인에 대한 규정입니다. 여인으로서는 사랑이라 생각했는데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사랑에 눈멀어 속아 버렸습니다. 그런 여인에게 물질적 보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보상을 통해 이 여인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 번째, 마땅히 죽여야 할 세 종류의 사람에 대한 말씀은 우선 뒤로 하고, 그 다음을 먼저 보겠습니다.
세 번째,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들이 당하는 어려움은 피할 수 없는 어려움입니다.
내 힘으로 막아낼 수 없는 어려움 앞에 노출된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그들을 ‘압제하지 말라 학대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이는 ‘난폭하게 행동하다. 내던진다. 억누르다. 억압하다’ 라는 의미인데, 특이한 것은 이렇게 말하는 성경이 어떤 구체적인 행동까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이 부르짖으면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겠다.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에 반응하여 노를 발할 때에는 너희를 죽이고, 너희 아내가 과부가 되고 자녀가 고아가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압제한 그 사람과 똑같은 상황이 되게 해 주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네 번째, 가난한 자들은 경제적 약자를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채권자처럼 하지 말고 이자를 받지 말라 말씀합니다.
또 이런 가난한 이웃의 옷을 전당 잡게 되면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라 말씀합니다.
그들에게는 그 옷은 유일하게 밤의 추위를 막아줄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대책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라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자비의 영역은 법적인 영역이 아닙니다.
법적인 영역에 속한 일들은 그 잘잘못을 따질 수 있지만 자비와 긍휼의 경우에는 비난은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법적 책임까지 묻기에는 애매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법적인 영역이 아니라 자비, 긍휼의 마음에서 나오는 더 넓은 의미 안에서의 행동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도덕에 관한 명령들 속에는 애매함이 있습니다.
이 규정들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도 도덕적 양심에 그 결단을 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선의 기준 사회적 약속에 그 기준을 두지만, 믿는 사람의 양심의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내 기준이나 사회적 기준은 변합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그 적용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상황이 좀 여유로우면 관대할 수 있다가도, 내 상황이 어려워지면 바로 마음이 옹색해지는 것이 우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기준 삼는 사람은 어떤 시대나 상황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기준아래서 행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른 도덕적 양심에 따라 행동하라 말씀합니다.
문장들이 어떤 구체적인 문제를 말하지 않아도 내가 바른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다양한 상황에 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하신 규정들에는 정확한 기준들이 있었습니다.
숫자적으로 정확하게 어떻게 행하라 말씀합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그 기준 삼으라’ 말씀하십니다.
자비함을 어떻게 숫자로 표현하고, 긍휼함의 양을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이러한 법까지 지키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게 되는 문제들 속에는 계산이 가능한 것도 있고, 계산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중 계산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도덕적인 기준이 필요한 문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양심, 선한 마음으로 바라볼 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 말씀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두 종류로 구분이 가능합니다.
선택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꾀임을 당한 여인이 있다면, 그 여인을 꾄 상대가 있는 것입니다.
나그네, 과부, 고아가 압제를 당했다면, 압제를 한 사람이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다면, 빌려준 사람이 있습니다.
돌로 쳐서 반드시 죽여야 할 세 종류의 사람들은 다 자신들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택권을 가지고 악한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죄의 대가를
하나님이 물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권이 없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내 삶 속에 피치 못해 만나는 문제가 있고, 내 선택으로 인해 겪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중에 내 선택으로 인한 문제 앞에서 그 선택의 문제를 돌아볼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말씀에서 보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하나님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위한 법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 같지만, 말씀을 더욱 깊이 묵상하다 보면 반대로 강한 자, 가진 자들에게 선포되는 말씀이 오늘 말씀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법이 정의롭게 이루어지려면 전적으로 힘을 가진 사람, 선택권이 있는 사람들이 법을 지킬 때 지켜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할 때, 내가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할 때에는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그런데 내게 선택권이 주어지고, 내 뜻대로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같은 마음으로 반응하며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내게 답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알 때는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었지만, 다른 선택권들이 내게 있다고 생각될 때 그때에는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약함, 악함이 우리에게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내게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를 말합니다. 그건 축복입니다. 어려움의 단계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
그것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하나님 앞에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성숙한 믿음의 사람 아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진정으로 잘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도 바르게, 선한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바르게 누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내 삶을 이 말씀에 잘 비춰보며 주신 복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우리 되기 바랍니다. 이처럼 도덕적인 바른 기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 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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