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창49:1-12
제목:축복하는 자로
오늘의 말씀은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라고 시작하며, 이 세상의 생을 마감하기 전에 야곱은 아들들을 향하여 후일에 당할 일을 알려주겠다고 한다. 흔히 이 본문을 ‘야곱의 축복’이라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이것이 과연 축복인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먼저 장자인 르우벤이다. 르우벤의 충동적이고, 변덕스럽고, 음탕한 성격을 지적하며 결국 탁월하지 못할 것임을, 그리고 결정적으로 야곱의 첩인 빌하와 간통을 하면서 아버지의 침상을 더렵혔음을 언급하고 있다. 또 마지막에 ‘그가 내 침상을 올랐었도다’(4절)라고 르우벤을 3인칭 ‘그’로 칭하며 자신과 특별한 관계가 없음을 표현하고 있다. 축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음은 시므온과 레위이다.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를 향해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혹독하게 얘기한다. 이는 그들의 누이 디나가 강간 당했을 때 세겜 사람들을 몰살시켰던 주범들이기 때문이다. 또 야곱은 레위와 시므온을 향해 단호하게 단절을 선언하고 있다. 이 역시 우리의 관점으로 축복이라고 말하기는 정말 어렵다.
하지만, 유다는 그야말로 축복이다.
유다는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할 때 요셉의 생명을 구했고, 또 기근의 때에 진실하고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다. 그래서 유다의 혈통으로부터 이스라엘 왕이 나왔고,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르게 된다. 이렇게 유다는 확실히 축복이다.
그런데 이렇게 책망과 저주가 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야곱의 축복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정적이고 저주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것에 화를 내며, 원망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켜서 새롭게 되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은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던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깨닫게 하시고 나를 새롭게 하시는 계기가 된다면 비록 지금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찌르고, 나를 고통스럽고 힘들게 하실지라도 결국 나에게 복이 된다는 말이다.
만약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 양심에 찔림이 있으면 그때가 복 받을 때이다. 그때가 내 삶을 새롭게 하고, 변화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때이다. 그때 믿음으로 반응하고 순종해야 한다.
야곱의 인생을 뒤돌아보면 그의 인생에 있어 ‘축복’이라는 단어를 뺄 수가 없다. 축복에 대한 갈망이 그의 삶의 동력이자, 야곱의 삶을 꼬이게 만든 주범 역시 축복이다. 그런데 야곱은 말년에 축복을 받는 자에서 축복을 주는 자가 된다. 한 평생 축복만을 추구했던 인생이 이제는 축복을 주는 자가 된 것이다. (창 47:7/48장/49장)
야곱의 인생을 보면 하나님이 주신 새로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 되기까지 옛 ‘야곱’이 오랫동안 그의 삶을 주장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내하심과 사랑으로 끝까지 야곱을 놓지 않으시고 이스라엘로 다듬으셨다.
야곱의 하나님이,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시다.
지금의 나의 삶이 변화되지 않은 야곱의 모습일지라도 하나님은 나의 삶을 이스라엘로 바꾸시기 위해 오늘도 인내하시고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도 축복을 받는 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주는 자, 축복을 흘려보내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