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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4-2-14 큐티말씀 - 찾아내지 못하리라(렘50:17-32)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4.02.20 16:14조회 수 15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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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렘50:17-32

제목: 찾아내지 못하리라

 

 어제 본문에 이어 17절에서 이스라엘을 흩어진 양이라고 표현하십니다. 그 양들이 지도자를 잘못 만나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앗수르가 바벨론이 이스라엘과 유다를 포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19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리니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양을 기를 것이며 그의 마음이 에브라임과 길르앗 산에서 만족하리라”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양떼가 되어 다시 하나님의 품에서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돌아온 백성들을 보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새벽이지만 너무 졸리시겠지만 좀 같이 찾아봤으면 정말 정말 좋겠습니다. 20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찾아내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남긴 자를 용서할 것임이라” 성도님들 죄악이 만연했던 백성들을 포로로 끌려가게 만든 것이 하나님이셨습니다. 포로 생활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도록 이끄신 것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신 것 또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하나님은 분명히 그 백성들의 죄를 용서했고 그 죄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죄 또한 용서하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는 하나님이 주신 평안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성도님들 어찌 인간에게 죄를 찾을 수 없겠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지금 “내가 용서 하리라. 그래서 그들에게 죄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를 멀리 옮기셨으며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고 다시는 기억도 않사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 은혜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를 때리시기도 싸매기도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 인생에게 있어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알고 순종하는 여러분 되시길 소원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예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본문은 한 때 하나님께서 유다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선포하시는 내용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할 민족에 내리시는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21절입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올라가서 므라다임의 땅을 치며 브곳의 주민을 쳐서 진멸하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다하라” 흥미로운 사실은 ‘므라다임과 브곳’이 바벨론을 대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을 서울과 부산 이렇게 대표해야 그래도 그러싸한데. 삼천포의 한국? 뭐 이런식으로 말하고 있다는 겁니다. 성경에서 므라다임과 브곳이 바벨론 제국을 대표하는 경우는 여기가 유일한데, 예레미야가 바벨론을 ‘므라다임과 브곳’이라고 부르시는 이유는 조롱의 의미가 있습니다. ‘므라다임’ 지명은 ‘고집, 반항’을 의미하는 ‘머리’의 쌍수형입니다. 갑절의 고집과 반항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은 하나님께 갑절의 고집을 부리는 성읍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브곳’이라는 지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브곳이라는 이름에는 ‘징벌하다, 보복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벨론이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 비빌로니아에 대한 공격에는 하나님의 징벌과 보복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향한 공격을 명하시는 분도 당신이시고, 그 공격을 승리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땅에 싸움의 소리와 큰 파멸이 있으리라’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사실 당대에 세계 최강대국 바벨론이 공격을 당하고 그래서 파괴당한다는 사실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쳐부수던 쇠망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온 세상에 원정을 다니면서 그들이 원하면 어떤 민족이라고 공격해서 쇠망치로 부수어버릴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할 민족에 의해 공격을 당하게 되어 부서지고 깨지게 된다는 예언입니다. 온 세상을 두렵게 했던 그들이 이젠 만민이 놀랄만큼 비참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을 쳐부수던 쇠망치’와 같은 바벨론이 깨어지고 부서지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무기가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세상을 깨뜨리는 큰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올무’에 걸린 짐승과 같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동시에 그들을 공격하는 하나님의 무기가 얼마나 강한지를 알려주셨습니다. 2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병기창을 열고 분노의 무기를 꺼냄은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갈대아 사람의 땅에 행할 일이 있음이라”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공격하기 위해 하늘의 무기고를 열고 분노와 심판의 무기를 꺼내신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는 그 무기를 하나님께서 직접 들고 ‘바벨론 땅에서 할 일’ 곧 그들을 부수고 깨뜨리는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바벨론을 공격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그토록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한 바대로 갚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29절 하반절 “그가 일한 대로 갚고 그가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라” 바벨론의 행한일이 구체적으로 그들의 심판을 받을 행위는 ‘교만’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는 교만이라는 단어를 반복합니다. ‘주 앞에서 교만하게 행하였으니’ ‘너 교만한 자야’, ‘교만한 자가 비틀거리다가’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바벨론의 교만을 죄악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한 때 바벨론 역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유다와 여러 민족의 죄악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던 그들이 교만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행했습니다. 그들의 무기창고를 의지했고, 그들의 곡식창고를 자랑했으며, 그들의 군사력을 앞세워 악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교만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과 하늘 무기 앞에서 그들을 무기력했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모든 것들을 깨어지고 부서지고 불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멸 앞에서 무기력했습니다.

 성도님들 이것이 교만한 자들의 운명입니다. 그들은 멸망 직전까지도 스스로를 높이며 자랑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대신 하나님을 업신여깁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기준이며 상식이고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이웃을 아낄 줄도 모릅니다. 그들 스스로가 심판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위를 아십니다. 그들의 행한 바대로 갚으십니다. 혹 그 심판이 우리 생각에 더딘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에게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때,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세계의 망치’라고 스스로를 높였던 바벨론처럼 우리가 가진 능력과 지혜와 건강과 물질을 자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교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아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주님 앞에서 우리의 이름이 ‘교만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시고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진심과 하나님의 목적은요.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침내 돌아와 주님 품에 안기는 그날을 하나님은 기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버지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항복하고 돌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가는 하나님을 만나는 복된 사순절 기간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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