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렘34:8-22
제목:언약백성의 본분
▶첫째, 환경 따라 살지 말고 오직 주의 말씀 따라 살아야 한다.
오늘 본문에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계약>을 맺고, 노예, 즉 노비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일을 행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의 위기가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드기야왕은 노비 해방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려고 했다. 신15:12의 말씀에 의하면, 가난이나 빚을 져서 불가피하게 노예가 된 사람이라도 노예가 된지 7년째에는 놓아주어 자유를 주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법을 유다백성들은 지키지 않았다. 그런데 바벨론에 의해서 예루살렘 성읍이 포위되고 망할 위기가 닥쳐오자, 시드기야왕과 백성들은 이 위기가 자신들이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에 이렇게 된 것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즉 성전 앞에서> 엄숙하게 맹세하고 노예들을 풀어준다. 그러나 11절에 보면 “후에 그들의 뜻이 변하여 자유를 주었던 노비를 끌어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았더라” 노비를 해방하는데 동참했던 사람들이 뜻이 변하여, “마음을 바뀌어서, 변심해서” 자유를 주었던 노비들을 잡아다가 복종시켜 다시 노비로 삼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애굽 군대가 유다를 돕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오자,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성을 포위했던 것을 풀고 유다 외각 지역으로 퇴각했다. 그러자 예루살렘이 위기에서 벗어난 것으로 생각되자,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시드기야 왕을 비롯한 고관과 백성들은 노비해방령을 철회하고, 풀어주었던 노비들을 다시 붙잡아다가 노비로 삼은 것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서원하며 기도하지만, 막상 어려움이 해결되고 삶이 평안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달라지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 닮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는 상황과 관계없이 일어나야 한다. 왜인가?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과 환경을 다스리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종이 필요하다.
▶둘째,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주의 긍휼을 구하며 살아야 한다.
시드기야 왕은 느부갓네살과 언약한 것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한 것도 지키지 않았다.(대하36:11-13) 그리고 시드기야는 노예해방을 선포했는데, 이후에 백성들이 언약을 깨뜨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막지 않았다.(11절) 그들이 노예해방을 했던 것도 자기들의 안전과 유익을 위해서 했던 것이고, 그들이 노예해방의 언약을 깨뜨린 것 역시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였다. 자기들의 재산과 소유에 손해가 나기 때문에, 언약을 깨고 풀어준 사람들을 다시 노예로 삼았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지 못한다. 성경은 인간이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에 실패했음을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을 통해 증거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죄 아래 놓여 있는 우리의 연약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의 실천>을 기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자리에 서는 것>이다. 우리는 시드기야처럼 어느 한 순간 말씀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환경 앞에서, 조금만 힘들어도, 조금만 마음이 상해도 무너지고 마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되지 않는가? 무엇이 믿음인가? 나의 연약함을 아는 것이 믿음이다. 이 믿음이 우리를 예수 안에 거하는 자로 이끌어 간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바르게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오늘도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성도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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