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렘34:1-7
제목:말씀에 순종해야 할 이유
▶첫째,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는다.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유다백성들이 듣기 싫어했던 이유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한다는 말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이나 생활해야 한다는 말씀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싫어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이 달라졌는가? 하나님의 뜻이 철회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결국 말씀하신대로 남유다는 멸망하고, 70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결국 하나님은 유다를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그대로 이루셨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스라엘을 다시 돌아오게 하고, 어제 말씀처럼, 구원을 주고, 안전을 주며, 번성을 이루게하겠다는 회복의 말씀도 다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는 분이다. 즉 한번 정해진 하나님의 뜻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고 끝까지 이루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이다.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소원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이다. 왜 내 소원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중시해야 하는가? 이유는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 세상이 다 없어지고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고 그 말씀하신 바를 이루신다. 그러므로 인생 최고의 지혜는 세상학문의 박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둘째, 순종하는 자는 하늘이 무너져도 살 길이 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이 모든 말씀”을 다 전했다.(6절) 사실 왕의 면전에 대고 “이 나라가 망할 것이며, 왕이 죽을 것”이라는 말을 전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예레미야는 이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했다가,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기도 했다. 그런데도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누구에게 가라고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충성된 선지자였다. 그런 예레미야의 결국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예레미의 결국을 책임지고 돌보셨다. 렘40장에 가면, 예레미야가 감옥에 갇혀 있다가, 느브갓네살 왕에 의해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러나 풀려난 후에 바로 이어 바벨론 군사들에게 붙잡혔다. 바벨론 군사들은 길거리를 걸어가는 예레미야가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풀려난 사람인줄 모르고 포로로 끌고 가려고 붙잡은 것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쇠사슬에 묶여서 백성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수많은 포로속에 섞여있던 예레미야를 바벨론의 총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알아본 것이다. 쇠사슬에 묶여 끌려가는 수많은 포로들 틈에서 그 사람이 그 사람 같고 구분하기 어려웠을텐데, 어떻게 느부사라단의 눈에 예레미야가 보여졌을까?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기적이라고 하거나 또는 억세게 운이 좋다고 말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운이 좋아서도 아니고, 기적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순종의 사람 예레미야를 보호하여 주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보호하시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며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절망적인 상황일지라도, 순종으로 사는 자에게는 피할 길이 있고, 살 길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상식과 판단으로는 도저히 희망도 없고, 답도 없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살 길이 있음을 믿으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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