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행 7:30-43
제목: 네 신을 벗어라
어제에 이은 스데반 집사님의 설교가 계속 됩니다. 그렇게 자기 힘으로 민족을 구원해 보려고 했던 모세의 시도는 어의 없이 실패로 끝나고 도망간 모세는 처가집에서 양을 치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40년이 지나서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에야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80세 이제 힘 없고 능력이 없고 그동안 배웠던 학문과 지식이 다 소용없을 때가 되니까 하나님은 모세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 장면을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일 중요한 구절이 바로 33절입니다. 함께 3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그동안 모세가 안됐던. 망했던 이유를 하나님은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네 신을 벗으라” 여기서 신을 벗으라는 것은 ‘너는 주인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네 신을 벗어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라. 성도님들 그 당시 신발은 자유자만 신는 것입니다. 노예와 같은 포로들에게는 신발을 신을 자격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감히 모세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아니 감히 어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자유자라고 주장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인간에게는 자유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인 되시고 하나님이 구원자 되셔야지만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 어제 본문에서 모세가 도망간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냐? 이 말에 모세는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40년 후에 다시 모세를 부르셔서 이제는 자기 스스로가 아닌 자기 힘으로 자기를 높였던 그 때가 아닌 하나님이 그를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써 보내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출애굽기의 모세 이야기는 스데반 집사님의 해석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이해될수 있는 부분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통찰력이 대단하죠?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정확히 알려 줍니다. 누구의 힘으로요. 자기의 힘과 능력이 아닌 하나님을 주인으로 삶는 삶에만 하나님이 원하는 뜻대로에 진정한 자유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그동안 왜 안 됐습니까? 우리가 지혜가 부족해서입니까? 우리가 능력이 부족해서 입니까? 우리의 열심과 우리의 열정이 부족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자기의 힘으로 뭔가 해볼려고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금 숨 고르기를 하면서 잠깐만 기다리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 신을 벗으셔야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감히 고개 들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많은 청년들과 성도들이 은혜 받으면 오해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아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 정말 재미없는 삶은 살게 되는 거구나.. 아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이제 앞으로 기쁨이란 없는 거구나.. 그래서 지금 말고 나중에 믿겠다고 하는 많고 많은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지금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고통이고 예배하는 일이 부담스럽고 힘들기만 한데 나중에 천국에서 평생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게 좋을까요? 힘든 일이겠죠? 그런 친구들은 다른 동네를 추천해 줍니다. 저 아랫동네 있잖아요. 그런데 성도님들 우리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기쁨과 자유와 즐거움은 바로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만 하나님과 함께 안에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임을 우리는 알잖아요?
하나님과 함께 할때만 진정한 행복과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올 한해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는 교회”라는 표어를 정하고 우리의 힘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기뻐하는 교회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올 한해가 3/2정도가 지난 9월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혈기를 부리며 우리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볼려고 시도를 했습니까?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오직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역사 하실 때만 우리는 이 일을 감당하실 수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 하나님께만 가능성과 기대와 소망을 두는 우리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0번이나 가라 못간다. 가라 안된다. 했던 모세와의 씨름에서 하나님은 결국 승리하셨고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의 백성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스데반 집사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이 모세 조차도 반대하고 반역하고 반대했던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과거를 이야기 합니다. 3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무려 열가지 재앙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쫓아오는 애굽군대 앞에서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흐르는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40년간을 먹이시고 옷이 헤어지지 않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불기둥과 물기둥으로 더위와 추위에서 보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마음은 애굽을 향했단 것입니다. 누가 가나안으로 간다고 했냐고? 차라리 그 때가 더 좋았던 것을. 그런데 출애굽후 4000년이 지난 지금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거역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예수님을 반역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스라엘의 특기가 한국사람처럼 반역인거 같습니다. 너희가 죽인 예수가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다 라는 스데반집사님의 설교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이를 갑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예수님을 믿었지만 스데반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스데반을 잡아 죽이려 합니다. 그래서 결국 스데반 집사님은 사람들에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됩니다. 성도님들 누구나 구원 받을 수 있지만 아무나 구원 받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이 해석을 해 주셔야만 성령님이 믿게 해 주셔야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게 기적인거죠? 우리들이 바로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 아닌 신발을 벗고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성도요 자녀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증인의 삶 잘 감당하시는 우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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