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왕하16:1-9
제목:여호와의 길로 행하라
강사:장평선생
3절에 “아하스가 이스라엘 여러 왕의 길로 행했다”는 말씀이 나온다. 길은 히브리어로 “데라크”로서, “계속 밟고 다니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행위에 따른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시편에서도 두 종류의 길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한다는 말씀이 나온다. 우리는 내 삶의 방식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다왕 아하스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그 이유는 1절과 5절 말씀에 보면, 유다의 북쪽에는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있고, 동북쪽에는 앗수르가 있고, 서남쪽에는 애굽이 있다 보니, 유다의 입장에서는 국제정세가 매우 불안하고 두려운 상태였다. 환경적으로 불안하다보니 유다왕 아하스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불안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찾아온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불안하게 된다. 그러나 성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신앙회복은 내가 통제하려는 통제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내가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며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로 성경을 보아야 한다. 그러나 아하스는 자기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었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 결과 아하스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①하나님과 멀어지는 길로 행하였다.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로, 하나님과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2-3절에 보면,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않고, 불순종한 이스라엘 열왕들의 길로 행하고, 이방인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았다. 아하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것과 이방의 풍요의 신 바알을 섬기는 것을 모순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혼합주의 신앙을 가졌다. 이런 사상의 특징은 그 사람의 중심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관계가 어려워진다. 이전에는 좋았는데, 나중에는 나빠지는 관계가 되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려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②그릇된 선택을 반복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되면, 대체적으로 부도덕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3절에 아하스는 자녀를 살리는 교육이 아니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죽음의 교육을 했다. 그리고 4절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멀리할 뿐 아니라, 산당도 짓고 우상을 숭배하면서 삶에서 예배가 무너졌다. 5절과 7-8절에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공격해 왔을 때,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성전의 물건을 앗수르 왕에게 뇌물로 바쳤다.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자기 생각을 따라 살았다. 이사야7:3에 선지자 이사야가 르신과 베가의 연합군의 공격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아하스는 듣지 않고 앗수르왕을 찾아갔다. 사람이 불안하고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을 찾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 행위가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는 노력이라면 그것은 죄가 된다. 9절에서 앗수르가 와서 아람과 북이스라엘을 정복했기 때문에 언뜻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불행이 되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자, 결과적으로 완충지대가 사라져서 앗수르가 직접 유대를 침략할 환경이 되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여러분, 불안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내가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하라.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불안에서 평안으로 바꾸어 주실 것을 믿으라.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임하게 될 것이다(요16:33)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