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역대상 29:20-30
제목: 역대상을 마치며
28장에서 시작된 다윗의 마지막 연설과 기도는 백성들이 다윗과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마치게 되는데요. 이 마음은 이튿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요.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제사가 드려집니다. 수송아지가 천 마리, 순양이 천 마리, 어린 양이 천 마리가 드려집니다. 과연 이게 가능할까? 할 정도로 엄청난 재물입니다. 21절 말씀에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 라고 했으니 정말 풍성하게 하나님께 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약의 제사는 항상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제사가 끝나면 그 많은 제물들을 어떻게 합니까? 제사를 드린 많은 사람들이 그날 또는 다음날까지 다 나눠 먹어야만 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마음을 모아 한 자리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재물이 들려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들은 모두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며 그 날을 즐겼습니다. 성도님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던 느헤미야의 외침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이 역대상의 마지막 본문인데요. 역대상의 마지막을 이 솔로몬에 대한 평가로 마칩니다. 솔로몬 그는 형통했고, 모든 이스라엘, 곧 모든 방백과 용사와 다윗의 다른 왕자들까지도 그에게 복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크게 만드시고 왕의 위엄을 주셔서 이전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더 뛰어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글쎄요 이전 이스라엘의 모든 왕이라 봐야 사울과 다윗 밖에는 없는데 다윗보다 솔로몬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에는 사실 동의가 잘 되진 않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국력의 관점에서의 평가인 것 같습니다. 다윗보다 솔로몬 때의 통치 영역이 훨씬 넓었죠. 또 화려한 성전과 왕궁 등 주변국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한 발전된 나라는 다윗 때보다 더 많이 보여주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겉모습은 그렇다 할지라도 어떻게 솔로몬을 다윗에 비할 수 있을까요? 만일 다윗이 없었다면 솔로몬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전혀 그렇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다윗으로 인한 결과물입니다. 여기서 다윗의 위대함이 드러납니다. 다윗의 위대성은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동안 다윗이 한 일을 보십시오. 자기 할 일을 다 했고 그리고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기 아들 솔로몬이 해야 할 일을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모두 준비해 놓았습니다. 다윗은 정말 죽는 순간까지 끝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다윗에게서 주신 사명을 성실히 수행했고 솔로몬을 통해 계속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성도님들 우리들도 다윗처럼 믿음을 전수하고 있나요? 신앙은 개인적인 일이니 알아서 하겠지 하십니까? 지금은 공부하는게 바쁘니? 대학가서 하라고 살짝 미뤄 놓고 있진 않으신가요? 청교도들은 노 바이블 노 브레이크페스트라고 성경 읽지 않으면 아침을 안줬는데. 요즘은 아침 먹지 말라고 하면 더 좋아할려나요? 지금으로 치면 노 큐티 노 스마트폰 정도 되려나요? 신앙은 개인적인 문제니까 시간이 지나면 신앙이 생기겠지 이렇게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는 사이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닐까요? 결국 솔로몬도 말년에 신앙의 균열이 생기고 말았는데요 우리의 자녀들은 과연 잘 이겨낼 수 있을까요?
솔로몬에 대한 평가, 즉 그 전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뛰어나게 하셨더라 저는 이 말에 100퍼센트 동의할 수 없지만 저는 이 말씀이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백 퍼센트 적용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가 새벽마다 늘 기도하는 것처럼 우리 자녀들이 우리 세대보다 더 뛰어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솔로몬의 성공적인 즉위와 통치 이후, 이제 모든 사명을 마친 다윗은 역사 뒤로 물러나게 됩니다. 26절부터 마지막까지는 다윗 왕에 대한 평가가 나옵니다. 평범한 사람 이새의 아들이었지만 온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헤브론과 예루살렘으로 묘사되는 남쪽 왕국 유다지역에서 다스렸지만, 역대상의 저자는 병행구절인 사무엘하 5장에서 ‘유다’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인용함으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을 강조합니다.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다윗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부와 영광을 누리는 최후를 맞이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다윗은 이야기의 주인공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말입니다. 늙고 약해져서 어쩔 수 없이 왕위를 넘기는 선왕의 모습이 아닌 마지막까지 강건한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후계자에게 계승하는 것까지 그제서야 다윗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그 다윗이 걸었던 하나님과의 동행은 온 이스라엘을 넘어서 세상 모든 나라의 역사에도 기록되었다고 역대기의 저자는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다윗을 통해 온 이스라엘을 넘어 온 세상 위에도 임하신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의 마지막과 솔로몬의 시작 가운데 역대기의 기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녹여두었습니다. 본문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온 회중’, ‘온 이스라엘’이라는 단어는 지역을 넘어, 시간을 넘어 모든 이스라엘에게 인정을 받는 위치에 있는 왕권이라는 의미입니다. 포로기 이후 구심점을 찾지 못하는 귀환 공동체에게 다윗이라는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강한 대왕의 모습은 매력적인 모델이었지요. 그 매력적인 지도자가 다름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는 왕이었다!! 이 얼마나 강력한 메시지입니까? 그러므로 오늘 솔로몬의 즉위는 단순히 권력의 이양을 넘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사명까지 후계자 솔로몬에게 이임하는 것이 다윗의 사명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윗의 일생, 그중에서도 그의 마지막에서까지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돈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돈을 얻는 법을 물려줄 것이고, 세상에서 권력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권력을 말하겠지요. 그러나 다윗은 온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자리에 솔로몬을 세웁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구요. 역대기 기자는 포로기 라는 역사의 어둔 그늘을 지나며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승리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은 모든 이스라엘이 함께 기쁨으로 제사를 드릴 성전을 세운 인물이기에 이스라엘 역사에 기억될만한 가치를 지니는 겁니다.
성도님들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라면, 남은 이들에게 무엇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죽으면 끝이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경험하듯,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것은 우리 생각에 단어 또는 문장으로 남는다는 겁니다. 역대기에 나타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보다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이런 저런 제도적인 정비를 하며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삶을 살았고, 아들 솔로몬에게도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규례와 법도대로 섬길 것을 유언으로 남긴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도님들 오늘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사랑하기에 예배에 기쁨으로 참여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성심껏 주님께 예배드림으로 세상의 시간을 넘어서 영원을 향하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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