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막6:45-56
제목:고난의 이유
첫째, 주께 쓰임 받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고난이 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직접 눈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이 없었다. 그래서 물위를 걷는 주님을 보고 놀라기만 한다. 왜 주님은 이런 답답한 제자들을 데리고 3년 반씩이나 훈련을 시키시는가? 그냥 지금 당장 성령충만을 주시면 안되는가? 사도행전 2장에 임하신 성령강림을 좀 앞당겨서 먼저 주시면 안되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걸음마 하는 아기를 붙잡고 빨리 걷게 하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제 처음 신앙생활 하는 사람에게 뛰어다니라고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갓난아기의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뛰지 않고 뭐하냐고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 25년의 훈련과정을 거쳐야 했다. 요셉도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13년의 훈련과정이 있었다. 도망자 모세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는 구원자가 되기까지 무려 40년의 훈련과정이 있었다. 하나님은 훈련 없이 사람을 쓰시지 않는다. 하나님이 쓰시는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훈련을 받았다. 훈련의 과정 없이는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없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다닌 20년의 고난을 한 마디로 정의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여러분, 고난은 성도를 훈련하는 유익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고난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모든 것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고난을 견디는 성도가 되라.
둘째, 오직 믿음으로만 살게 하려고 고난을 허락하신다.
48절에 “바람이 거스른다”는 것은 “역풍이 불었다”는 뜻이다. 마14:24에는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고 말씀한다. 주님이 가라고 하신 길에 순종하여 가는데 왜 고난이 있는가? 게다가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시간은 <밤 사경>이었다. 사경은 새벽 3-6시이다. 날이 저물어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고, 아무리 늦게 출발했어도 밤 9시에 출발했다고 쳐도, 제자들은 최소 6-8시간을 바람과 싸우며 고난을 당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이 고난당하는 것을 아셨을텐데, 왜 일찍 구해주러 오시지 않고, 밤 사경이 되어서야 오시는 것인가? 그것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가르치시기 위함>이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은 주님만 의지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고난을 통해서만 가지게 된다. <밤 사경>은 3-6시 사이의 시간으로, 어둠의 마지막 시간이다. 사경이 지나면 드디어 날이 밝아온다. 시간적인 <밤 사경>은 시간만 지나면 온다. 그러나 인생의 <밤 사경>은 하루 뒤일 수도 있고, 한달 뒤일 수도 있고, 일년 뒤일수도 있다. “나는 아직 할 수 있다”라고 생각되면 주님이 도와주시는 <밤 사경>은 오지 않는다. “나는 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할 때까지 우리 인생의 <밤 사경>은 오지 않는다. <밤 사경>은 언제 오는가?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인정할 때 온다. 사업은 내가 하는 것이지 하나님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밤 사경>은 오지 않는다.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지, 하나님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밤 사경>이 오지 않는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힘겹게 노저으면서 고난당하는 것을 보시면서도 밤 사경까지 기다리셨다. 전직 어부로, 갈릴리바다의 전문가였던 제자들의 손에서 힘이 빠지고, 이제 내 힘으로 안되겠구나 할 때 주님이 찾아오셨다. 주님은 우리가 원망불평이나 의심이나 낙심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신다. 53-56절에는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되는데, 56절에 놀라운 말씀이 나온다. 예수님께 손을 대는 자는 다, 누구나 성함을 얻게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다. “성함”(헬:에소존토)은 “구원하다, 온전하게 되다”는 뜻이다. 예수님께 나아와 손을 댄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의 은혜, 회복의 은혜를 얻었다. “손을 대다”는 말은 “믿음”을 의미한다. 혈루증 걸린 여자가 예수님께 손을 대었을 때에 나음을 얻었다.(막5:28) 그때 무슨 마음으로 손을 대었는가? 내가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믿음으로>였다. 게네사렛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했는데도 회복의 은혜를 입은 것은 <믿음>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오직 주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이다. 어떤 피치 못할 상황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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