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막6:30-44
제목:오병이어
오늘 본문 유명한 말씀입니다. 저 오병이어에 트라우마 있는거 아시죠? 저번에 한번 말씀 드렸었는데요 저 전도사 1년차 때 초보전도사로 유초등부 30명을 놓고 설교하다가 제가 그랬습니다. “애들아 우리 예수님이 얼마나 대단하신지 아니?” “우리 예수님은 물고기 5000마리로 12명을 먹이셨어?” 그러자 앞에 앉아 있는 애가 “와 배터져 죽었겠다!!”저 이런 사람입니다. 지금도 초보목사가 되어 설교 하고 있으니 여러분 배터져도 책임 안집니다.
오늘 본문이 이렇게 시작을 하는데요. 첫마디가 “사도들이입니다” 이 사도라는 말을 잘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다 의도가 있어서 마가가 써놓은 단어입니다. 사도란 아포스톨로스 파견된 자라는 뜻이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로부터 직접 선택된 자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있었고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공식인정을 받는 제자들을 사도라 칭합니다. 이 사도라는 말이 참 중요한데요. 교회를 이 사도들의 터 위에 즉 예수님이 전하신 말씀 위에 세웠거든요. 그러므로 이 사도라고 하는 직분이 무너지면 예수님의 말씀도 무너집니다. 그래서 사도는 즉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듣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으로 곧 예수님의 말씀이라는 뜻이 됩니다. 오늘 본문 30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토요일 본문이었던 6장 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느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열두 제자를 따로 부르시고는 그들을 마을로 보내셨습니다. 그러자 12절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13절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아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자 그들이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를 고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어제 본문에서 세례요한의 죽음을 소개하고 다시 오늘 본문이 제자들의 보고를 받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31절입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수고했다. 이제는 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제 사역을 마치시고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가셨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그러자 그들을 보시고 34절에서 “불쌍히 여기사” 그런데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실 전 여기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에게 돈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목자 없는 양과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아멘.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예수님 누가 말씀을 가르쳐 달래요?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라고 하는 많은 외침 가운데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아멘 그래서 우리 교회도 말씀을 계속 가르칩니다. 싫어도 반대해도 예수님 오실 때까지 교회는 가르치는 사역을 멈추지 않습니다. 왜요 예수님이 우리 교회에게 주신 중요한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5절 때가 저물어가니 오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저녁식사를 할 시간이 되자 제자들은 예수님께 “무리들이 각각 식사를 하고 돌아오게 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는 명령을 주십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엄청나게 많은 비용인 200데나리온이나 드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돈이 있어도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일 음식을 살 수 있겠냐?며 지금은 빈들이라 배달도 안될텐데요.. 예수님께 반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대응하시지 않은 채 지금 가지고 있는 음식이 얼마나 되는지를 확인하게 하십니다. 제자들이 모인 이들에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리들을 잔디밭에 앉게 하십니다. 그리고 일상의 식사처럼 식사를 나눕니다. 본문 41절의 ‘하늘을 쳐다보고 축복하시는’ 유대 식탁의 일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담담하게 예수님은 빵과 물고기를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됐습니까? 우리가 아는 것처럼 도저히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 사건은 남자 성인만 5천명이 넘는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었고, 오히려 남았다는 결과만을 일러줍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주님을 따라 홍해를 건넌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이 허락된 사건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광야의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이 있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적은 그들이 조상들이 역사 속에서 만났던 하나님을 기억나게 하는 사건입니다.
마가는 특별히 이 오병이어의 사건을 제자들의 선교여행 뒤에 붙여두었습니다. 가장 극적인 효과를 노렸다면 야이로의 딸을 살린 이야기 앞이나 뒤에 두어서 ‘일상의 필요를 채우시고, 생명도 주관하시는 분’으로 돋보이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는 제자들을 사도라고 부른 직후, 사도라고 하는 제자들도 이해할 수 없었던 오병이어의 기적이야기를 함께 이어서 전합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도’라고 불릴 만큼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한 참 이들이었지만,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그리고 그 분의 사역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함을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선교사명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예수님이 행한 이적과 기사 가르침을 잘 완수했어요. 예수님이 외딴 곳에서 무리들을 가르치실 때 상황을 보고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무리들을 먹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예수님 불가능 합니다” “그건 안됩니다.” “그건 어렵습니다” 이야기하며 예수님의 뜻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직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성도님들 오병이어는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믿으십니까? 우리의 생각이나 상식으로 그 사역을 제한하는 것은 바른 믿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사도라 칭함을 받을 만큼 하나님의 사역에 열심이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쳤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그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너희가 먹을 것을 나눠 주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네! 예수님 여기 있는 것은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지만 예수님이 명령하셨기에 나누겠습니다. 라고 반응하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바로옵기는 이 믿음으로 칭찬받는 성도들 그리고 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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