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4:21-34
제목: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마가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십니다. 이 비유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사전적인 의미로는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직접 설명하지 아니하고 다른 비슷한 현상이나 사물에 빗대어서 설명하는 일” 이라고 합니다만 헬라어로 파라볼레 라고 불리는 성경의 비유는 “말의 의미가 곁에 나란히 놓은 것” 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평형성인 이 둘은 절대 만날 수 없다는 뜻이죠. 토요일 본문인 4장 11절에서도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시는데요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사전적 의미의 비유는 더 잘 설명하려고 하는게 비유라는 방법인데 성경에서 말하는 비유의 목적은 감춘다는 것입니다. 감추어진 이라고 표현되는 이 비밀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가 두 개가 있습니다. 여러 번 말씀 드렸는데요. 첫 번째는 시크릿입니다. 이 시크릿은 감추인 것입니다. 군사작전에 쓰는 일급 비밀과 같은 공사입찰 금액과 같은 그래서 이 비밀은 뜯어서 보기만 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감추어진 내용입니다. 그러기에 이 비밀은 잘 감추기만 합니다. 두 번째는 미스테리입니다. 같은 비밀이지만 이 비밀은 보라고 줘도 알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봐고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는 게 바로 미스테리입니다. 신비라고 하는 말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시크릿 입니까? 미스테리 입니까? 성경은 미스테리입니다. 감춘자이신 하나님이 풀어주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미스테리, 신비라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어떻게 성경이 믿어지십니까? 성도님들 어떻게 2000년 전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분이 나의 죄를 다 용서해 주셨습니까? 이게 어떻게 믿어지십니까? 바로 성령님이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이 신비를 깨닫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고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마가복음에 소개하고 있는 비유도 말씀하신 예수님이 아니면 성령님이 아니면 풀 수 없는 미스테리한 신비로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중요한데요.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소개한 비유의 뜻을 직접 설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이비 가짜들이 자기만 비밀을 안다고 하는데요. 이점이 중요합니다. 비유이자 비밀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니면 그 내용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것만 믿는 것이 바른 믿음이자 성경을 대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가르치시는데요, 그 비유가 전하고하는 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까? 바로 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예수께서 선포하셨던 복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하신 선포인데요. 과연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어떻게 오는가 하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 바로 오늘의 비유들입니다. 우선 4장에 나온 비유들을 살펴보면요 첫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먹었고, 또 더러는 돌밭에 떨어져 말라버렸고, 또 더러는 가시덤불 탓에 열매를 맺진 못하였는데,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자라서 큰 열매를 맺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묻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 비유가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는 말씀 앞에 반응한 다양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는 말씀을 들었지만, 악한 자에게 빼앗긴 사람들, 돌밭에 뿌려진 씨는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데 발생한 어려움에 좌절한 사람들, 가시밭에 뿌려진 씨는 하나님 나라 앞에서 세상의 욕심을 포기 못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복음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 삶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나쁜 소식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좋은 땅은 그 말씀에 따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옴을 믿고, 자신의 삶을 그 나라에 걸맞게 조율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들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두번째 비유는 등 경위의 등불입니다. 역시 하나님 나라의 비유입니다. 등불은 어둠을 밝히기 위해 등 경위에 올려놓는다고 하십니다. 등불은 목적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밝히 보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등불입니다. 어두운 세상에 환한 빛을 비추는 등불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기 자신을 위한 나라가 아닙니다. 세상을 위한 곳입니다. 세상에 빛과 복을 나누어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되다 하십니다. 그럼 우리가 세상에 무엇을 주어야 할까요? 세상은 우리 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잖습니까? 그래서 세상이 없는 것을 줘야 하는데요? 그것은 평안과 화평 그리고 생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 참 평화와 평안을 전하는 생명을 전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스스로 자라는 씨 비유입니다. 씨 뿌린 사람이 잠든 사이에 씨가 자랍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 되었는지 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모른다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 온다 저렇게 온다 하던 주장들이 있었지만, 주님의 말씀은, 그 나라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라나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넷째 비유는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역시 하나님 나라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아서 아주 작게 보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촌 동네에서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로마제국에 비하면 겨자 씨앗만큼 작고 초라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성공과 자랑, 힘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매력 없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사랑이라든지, 평화라든, 생명, 섬김, 정의와 같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세상이 자랑하는 힘보다 보잘것없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의 강력해 보이는 그 어떤 것보다 넉넉하게 자라나 모든 생명이 넉넉히 깃들 평화를 줄 것이라 우리에게 일깨워 주십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의 선포가 메아리처럼 들립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세상의 만연한 죄, 그리고 집요한 유혹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오고 있음을 믿어라 하십니다. 세상에 익숙해진 삶의 방식을 돌이켜 하나님 나라를 향하라 하십니다. 그 과정이 자칫 괴롭고 손해 보고,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끝내 우리에게 참 평화를 주는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기쁨과 희망을 들려주십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땅의 당연함을 뒤집는 하늘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옴을, 반드시 옴을, 그러니 그 나라의 백성으로 참되게 살아가라는 강력한 요청입니다. 우리가 그 요청에 '아멘' 하며 응답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길 소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추구해야 할 것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이 얼마나 측량할수 없는 은혜요 복음입니까? 이 복음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님을 우리 주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간다구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로써 그 말씀을 따르는 자로써 거룩한 성전으로 자기 몸과 생각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려고 몸부림 치는 복되고 귀한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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