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삼하22:1-18
제목:구원의 하나님
첫째, 성도의 반석이 되어주시는 하나님
본문 2-3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자,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높은 망대, 나의 피난처,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했다. 표현은 다양하지만, 사실 의미는 한 가지이다. 하나님은 구원자가 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여러 표현 중에 <반석>이라는 표현이 가장 많이 나온다.(2절, 3절, 32절, 그리고 47절에 두 번 반복) 왜 다윗은 구원자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했을까? ‘반석’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5절을 보면,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라고 말한다. 사망의 물결은 “그를 죽이려고 덮치는 물결”이고, 불의의 창수는 “파괴시키는 홍수”를 의미한다. 다윗의 시는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다윗의 삶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다윗에게는 그를 공격하는 원수와 대적이 많았다.“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다”(시3:1)고 고백했다. 그들의 공격을 사망의 물결과 불의의 창수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파도와 창수(홍수)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반석”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반석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본문에 다윗은 구원에 관한 모든 표현을 수동태로 표현했다. “나를 구원하셨도다”(3절) “구원을 얻으리로다”(4절) “나를 붙드심이요, 많은 물에서 나를 건져내셨도다”(17절) “나를 건지셨음이여”(18절) 이것은 “구원이 인간의 능력이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이기에, 인간은 구원을 수동적으로 받을 뿐”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중요한 것은, “성도가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느냐?”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여러분의 삶을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흔들리지 않도록 막아주시는 반석이신 하나님이신가? 여러분을 지켜주시는 요새이신 하나님인가? 여러분의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이신가? 여러분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이신가?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확신하며 믿어야 한다. 반석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되어주실 것이고, 방패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모든 공격을 막아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고백한 대로 우리를 모든 고난과 문제로부터 건져주시는 구원자가 되어주실 것이다.
둘째, 성도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5-6절은 다윗이 자신에게 닥쳐왔던 죽음의 위기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그런데 위기상황에서 다윗이 보인 반응은 기도하는 것이었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4절)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7절에) 다윗은 위기상황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낙심하는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께 아뢰며, 부르짖었다. 이것이 고난을 대하는 성도의 마땅한 반응이어야 한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사랑하는 다윗에게 고난과 역경을 허락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을 붙들게 하기 위함>이다. 기억하라. <세상은 본래 하나님을 붙잡으라고 흔들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들릴 때,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붙잡기 마련이다. 그런데 넘어질 때는 나랑 같이 무너지고 넘어질 것을 붙잡으면 안 된다. 흔들릴 때는 넘어지지 않는 것을 붙잡아야 한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흔들리고 무너지려고 할 때, 우리가 붙잡아야 할 분은 반석이신 하나님이다.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을 붙잡는 사람은 절대로 넘어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고난은 기도하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알람시계이다.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119를 부른다. 그러나 119구조대원도 해줄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힘들면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면 자존심만 상할 수 있다. 그러나 “나 좀 도와주세요. 나 좀 도와주세요.” 천번 만번을 외쳐도 자존심 상하지 않는 대상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람에게 쏟아놓지 말고, 하나님께 쏟아놓는 성도가 되라. 그런데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7절에 보면,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내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될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다윗은 그냥 조용히 기도하지 않고, 부르짖어 기도했다고 나온다. 부르짖음은 히브리어로 “카라”인데, “절규하다”는 뜻이다. 다윗이 하나님께 절규하듯이 부르짖어 기도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8-18절이 바로 다윗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에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요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어떤 태산같은 문제가 있다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기도에 응답하실 구원자 하나님을 믿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의 사람 되시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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