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삼하19:24-30
제목:성도의 참된 믿음
첫째, 모든 결과를 주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 믿음이다.
다윗은 왕위에 올라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은혜를 베풀었다. 사울왕가의 모든 재산을 므비보셋에게 주고, 또 그를 다윗의 왕궁에서 함께 지내게 하며, 왕의 식탁에서 다윗의 왕자들과 함께 식사하도록 은혜를 베풀었다. 그런데 압살롬의 반역사건이 일어나 다윗이 피난을 갈 때에, 므비보셋도 다윗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그의 종이었던 <시바>라는 사람이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하는 불구인 므비보셋을 따돌리고, 다윗왕을 찾아가서 므비보셋이 다윗왕을 배신하고 왕이 되려고 한다는 거짓말을 하여 모함을 한다. 그 말을 들은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주었던 재산을 전부 시바에게 줄 것을 약속한다. 그 후에 압살롬의 반역사건이 모두 끝나고,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므비보셋이 다윗을 맞이하는 내용이 본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피난 갈 때 시바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기에 “그때 왜 함께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므비보셋은 자신이 고의로 다윗을 따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은 왕과 함께 가려고 했으나, 종 시바가 자기를 속여서 어쩔 수 없이 함께 하지 못했음을 말하며, 시바가 자기를 모함했음을 말한다.(26-27절) 그런데 27절 하반절에 놀라운 고백을 한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이 뜻은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과 달리, 내 주 왕께서는 옳고 그름을 공정하게 판단하는 천상의 존재와 같은 분입니다. 그러니 왕의 마음대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솔직히 므비보셋의 입장에서는 자기를 속이고 모함한 시바를 벌해달라고 요구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므비보셋은 지금 자기 생각, 자기 뜻을 내려놓고, 모든 처분을 왕에게 맡기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을 왕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이것이 다윗을 대하는 므비보셋의 자세였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믿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믿음이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믿음이기도 하지만, 사실 믿음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의 행사를 맡기라. 네 길을 맡기라. 네 염려를 맡기라. 네 짐을 맡기라”고 요구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가난하기에 맡기라는 것인가? 우리가 병들었기에 맡기라는 것인가? 우리가 능력이 없기에 맡기라는 것인가? 아니다. 맡기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에 맡기라고 하시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내가 결정하면 내가 책임져야 하지만,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둘째,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이 믿음이다.
다윗은 므비보셋의 변명을 다 듣고 나서도 이상한 판결을 내린다.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29절) 시바의 속임수와 모함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거짓말을 했던 시바에게 벌을 내리고, 모든 재산을 다시 므비보셋에게 돌려주는 것이 공의로운 판결 아닐까? 그런데 다윗에게 거짓말을 하고, 자기 주인을 모함한 시바를 벌주지도 않고, 재산을 반으로 나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이런 결정에 대한 므비보셋의 반응이 무엇인가?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30절) 시바에게 모든 재산을 주라는 것이다. 지금 므비보셋이 무슨 마음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28절에 나와 있다.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므비보셋은 자기 아버지의 온 집이 다윗 앞에서 <죽을 사람>이었음을 말한다. 즉 <자신은 죽었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실 므비보셋은 다윗의 원수였던 사울왕의 후손이다. 사울의 가문이 망할 때 같이 망했어야 할 사람이다. 그런데 다윗은 원수가문의 므비보셋을 왕자처럼, 자기아들처럼 대해주었다. 원수 집안의 자손인데 죽이지 않고, 오히려 다윗의 아들들과 함께 왕의 식탁에서 식사하는 은혜를 베풀어주었다. 그러니 자기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억울하다고 부르짖을 수가 있냐는 것이다. 자기가 지금 살아있는 것도 다윗의 은혜인데,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자기가 또 무엇을 가지고 왕에게 억울하다고 호소하겠냐는 것이다. 므비보셋은 다윗에게 받은 은혜가 너무 컸기에 시바에게 속은 것이나, 자기 재산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억울함이나 불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재산을 시바에게 주라고 말하는 것이다. 분명 므비보셋이 처한 현실은 <억울함>이었다. 그러나 다윗의 은혜를 입은 므비보셋의 마음은 자기의 억울한 현실과 처지를 초월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성도에게는 어떤 일이든 억울한 일은 없다>는 것이다. 왜인가?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의 삶은 그저 은혜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덤으로 주신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덤으로 얻은 인생이고, 우리가 현재 누리는 모든 것은 다 플러스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가난하다고 해서, 병들었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해서, 원하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은 과연 나를 사랑하시기는 하십니까?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것 밖에 주지 않습니까?”라고 불만을 품거나 억울하다고 부르짖을 수 없다. 개만도 못한 나를 하나님의 자녀삼아주시고, 영원한 천국백성 삼아주셨는데, 무엇이 억울하고, 무엇이 부족한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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