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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1-11-8 큐티말씀 - 그러므로 견고하라(고전 15:50-58)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1.12.02 21:53조회 수 9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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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전 15:50-58

제목: 그러므로 견고하라 

 

오늘 본문은 부활장의 마지막 결론 부분입니다. 왜 ‘부활’이라는 단어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자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지금 이 편지를 읽고 있는 우리들에게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 이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고난을 당하고 박해와 멸시를 받고 있는... 멸시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세상 역시 죽음이 왕 노릇하고 있는 세상이기에 죽음이 끝이 아닌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부활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들에게도 너무나도 중요한 위로와 안심이 되는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복음의 핵심인 부활을 다시 설명합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리고 부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설명합니다.  

 성도님들 부활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입니까? 사전적으로는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도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성경만 봐도 나사로가 다시 살아 났구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그리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다시 살아난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이 아닙니다. 나사로가 살아났지만 그 삶속에서 감기가 걸렸을꺼고 나이가 들어 우리랑 똑같이 앉았다 일어나면서 아이고 했을꺼고 결국은 나사라도 다시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결국은 다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다시 살아남 이건 일시적인 다시 살아남이지 영원한 부활이 아닙니다. 성경은 부활이 우리의 상식과는 완전히 다른 특별한 일임을 설명합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처음 듣는 다는 표정으로 우리의 몸도 부활하나요? 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성도님들 조금 전에 고백하신대로 사도신경에 맨 마지막 부분에 보면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라고 방금전 고백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이 몸의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교리입니다. 왜 몸이 부활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놓으셨는데. 예를 들어 지옥에 갔는데. 몸이 없으면 무슨 고통을 당합니까? 영은 아무리 때려도 찔러도 불에 데여도 아플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천국에는 생명나무 열매와 생명수를 먹고 마신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의 몸이 없이 영혼만 있으면 어떻게 먹고 마실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기독교의 부활교리는 몸의 부활입니다. 영은 물론이거니와 이 썩어진 육신이 아프고 부족한 우리 육체가 다시는 썩지 않고 아프지 않고 쇠하지 않는 거룩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부활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부활의 교리입니다.

 

 오늘 본문인 50절이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혈과 육은 썩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과 사귈수 없습니다. 사귀기는커녕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이 땅에서 부활을 친히 몸소 보이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 땅에 부활하신 그 몸으로 오실 것입니다. 어제 본문이었던 35절은 그 부활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그래서 사도 바울은 씨앗으로 부활을 설명합니다. 씨앗이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그 씨앗은 원래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라는 것처럼... 검정색 조그만 씨를 심었지만 나중에는 커다란 과일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부활도 지금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을 말씀합니다. 부활은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활할 몸은 지금 몸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은 썩어질 몸이라 하나님 나라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영화로운 존귀한 몸으로 부활시켜서 하늘나라로 이끄십니다. 그래서 화장으로 시체를 태웠던 땅에 묻는 매장을 했던 물에 잠기는 수장을 당했던 병으로 또는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던 그 모든 것에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좋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임을 성경은 말해줍니다. 그 때가 몇 살인지 어떤 모습일지는 우리의 상상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던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모습. 어떻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모습으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실 것이고 그 영화로운 영광스러운 몸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을 여러차례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부활한 몸이 어떤 모습일까요, 성경에 힌트가 되는 구절들이 몇군데 있습니다. 먼저 누가복음 24:16에 보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이 등장을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소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길에서 만나 그들에게 말씀을 들려주신 이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지금 예수님과 함께 말씀을 나눴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그 제자들이 예수님을 못 알아 봅니다. 저는 그래서 아이고 너무 하네. 아무리 그래도 3년이나 함께 한 예수님을 못 알아보다니 했었는데.. 이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여기서 다른이라고 표현하는 헬라어가 ‘헤티로스’인데요 그 뜻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예수님을 못 알아 봤겠죠? 누가복음 9장 28절에는 ‘변화산 사건’이 나오는데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기도하실때 모양이 변화되었다는 단어가 바로 헤티로스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육신의 몸을 입고 변화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 땅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렇게 부활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부활의 몸이 되면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아픔도 없고 죄도 없고 오직 영화로운 모습으로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부활? 부활에 대한 증거가 있냐고 물어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부활 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가지고 부활하신 부활의 첫 열매가 돼서 이 땅 그 이후로도 두 번째 세 번째 많은 열매가 맺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이 바로 우리의 부활입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은 부활장의 결론을 내는데요. 왜 사람들은 건강해 지려고 그렇게 노력을 합니까? 운동을 하고 좋은거 먹고 종합검진을 받고 등등. 우리는 모두 다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권세와 권력과 한 미모를 해도. 결국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죽음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이래서 지금 이 죽음은 이 땅을 통치하는 왕 노릇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부활을 하게 되면 죽음은 더 이상 우리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55절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56절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을 비꼬는 겁니다. 사망아 니가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 사망 니가 지금 우리를 이긴 것처럼 보이지? 아니거든. 57절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라고 고백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부활장의 마지막 결론 부분인 58절인데요.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아멘 그래서 성도들에게 견고하게 흔들리지 말며 이 세상이 아닌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며 그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권면합니다. 이 삶이 다라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들이겠으나 이 세상이 끝이 아님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기에 이 땅에서의 수고와 이 땅에서의 헌신과 핍박과 박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임으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이 사도바울의 결론입니다. 

 이 부활은 그 동안 사망의 권세아래 놓여있던 인간들을 이제는 종이 아닌 이제는 진정한 자유자 주인으로 만들어 놓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사망과 질병도 고통도 눈물도 아픔도 슬픔도 죄도 없는 영화로운 모습으로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토록 왕 노릇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소망이 이 땅이 아닌 하늘에 있음을 알아 부활의 소망 부활의 능력을 자랑하며 사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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