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전 12:12-26
제목: 하나님의 원하신 대로
성도님들 교회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서 교회를 설명한다고 했을 때 어떤 단어로 대체해서 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는 3가지로 표현을 하는데요 ‘그리스도의 몸/ 구원 받은 공동체의 모임/ 성령의 전’ 이러한 단어를 교회와 동일시 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문제 많았던 고린도 교회 안에는 은사가 다름으로 인한 다툼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워낙 뜨거웠던 교회였기에 영적으로 자랑을 넘어 교만에 이른 교회였기에 서로의 은사와 역할에 차별을 두고 서로 눈에 띄는 일만 하려고 싸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한 비난과 차별과 원망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들었던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라고 주신 은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12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성도님들 우리의 몸 중에서 어떤 장기가 제일 중요할까요? 선뜻 대답할 수 없죠? 어디가 중요하고 안 중요하고 하겠습니까? 물론 당장 없으면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장기들이 있긴 하지만 조그만한 부분 어떤 장기라도 문제가 있어도 온 몸은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교회를 위한 은사와 섬김에는 각각 차이가 있을 뿐,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어느 것이 덜 중요한가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몸 속에 있는 장기는 하나라도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체가 더 중요하듯, 화려하지 않은 은사가 더 귀하다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22절에 보시면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이 말은 눈이나 귀가 덜 귀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을 통하여 사도 바울은, 은사에 차이가 없고 중요도에도 차이가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은사는,
첫째.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18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원하시는 대로'라는 말은 원문에 '델로'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원래 뜻은, '바라고 원하고 좋아하고 기뻐하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선물로 주셨다는 뜻입니다. 내가 왜 남자로 태어났습니까? 내가 왜 여자로 태어났습니까? 하나님께서 바라셨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에 내가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것을 원망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좋은 걸 주셨을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발견하면 모든 일에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한 사람이 타국으로 가면서 종 셋을 불러서 자기 소유를 맡겼습니다. 마태복음 25:15에서는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재능대로, 각각 다른 액수를 주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들에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다르게 준 것은 주인이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 주인 마음대로 다르게 준 것입니다. 주인에게 왜 내게는 한 달란트만 주셨습니까 라고 종이 따져 물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주인 마음대로, 주인이 바라는 대로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은사는 하나님의 선물인데 선물은 하나님의 마음대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모든 교회는 ,
둘째. 그리스도의 몸이자 성령의 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라고 했습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세워졌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반석이라고 합니다. 교회를 이 신앙고백위에 세우시고 흔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 10장 3절에서 다같이 신령한 음식을 먹으먀 4절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성만찬은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죽고 예수님 때문에 살아났음을 기억하는 의식입니다. 성찬식을 함께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한 몸이신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한 성령 한 몸 한 주 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주안에 한 가족이자 한 몸 공동체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몸인데 어떻게 서로 비판하고 비난할수 있냐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이제는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서로가 도와야만 그 몸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습니다. 왜 나는 눈이 되었고 왜 나는 보이지도 않는 콩팥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교회를 섬기라고 성도들을 섬기라고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찬양대이고 나는 교사이고 나는 안내를 하며 주일날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고 화려하게 보이는데, 왜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계단 청소를 해야만 합니까? 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에게 다른 은사를 주신 이유는, 우리의 은사를 따라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성령으로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한 몸이지만 여러 지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짧은 사람의 소견에는 은사가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귀한 은사와 덜 귀한 은사가 편해 보이는 직분과 어려워 보이는 직분이 있어보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동일하게 귀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은사는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은사를 두고서 비교하여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받은 대로 적게 받은 사람은 적게 받은 대로 자기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면 하나님은 그것으로 잘했다 충성된 종아 함께 하늘의 기쁨을 누리자고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다른 은사를 주신 것은, 누구든지 은사를 가지고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은사는 우리가 개별해 낼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들의 말처럼 어떤 누군가가 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셨기에 주신 분을 칭찬하고 주신 분께 영광돌리고 주신 분의 뜻대로 잘 사용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우리에게는 가정을 섬기는데 받은 은사, 교회를 섬기는데 받은 은사, 직장과 사회공동체를 위해 받은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 은사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은사를 잘 활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가정을 더 잘 섬기고 교회를 더 잘 섬기며 직장에 더 잘 활용할까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게 주신 은사에 감사하며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 그것을 잘 사용하는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입니까? 내가 제일 잘 하는 재능이 무엇입니까? 내게 주신 귀한 은사, 귀한 재능에 감사하며 그것들을 잘 활용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