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전 6:12-20
제목: 성도의 몸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우리를 사셨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그리스도의 지체>요,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삼으셨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성도는 진리 외에 그 어떤 것에도 매이는 삶을 살면 안 된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12절) 그런데 오해하시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는 말은 바울의 말이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주장이다. 당시 고린도에는 헬라문화의 영향으로 이원론 사상의 영향력 속에 있었다. 이원론은 영혼과 육체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고린도교회는 구원에 대해서 영혼이 육신에 매이지 않고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영혼이 구원을 얻었는데, 육신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면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 마음대로 자유를 누렸는데, 그 자유가 음행까지 가게 한 것이다. 몸은 어차피 썩어질 것에 불과하니까, 몸은 무얼하든지 영혼만 신령하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상 오늘날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비슷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주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자신의 연약함을 핑계대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인간은 죄인이니까 어쩔수 없다고 하면서 죄 가운데 사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교회의 이원론과 흡사한 모습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의 주장을 받아서, “그래. 너희 말이 맞다. 성도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겠다. 즉 나는 어떤 것에도 지배당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고린도교회성도들은 <영이 구원받았으면 몸은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는 입장에서 “모든 것이 내게 가하다”고 주장했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리스도를 위한 모든 일은 다 가하다>는 입장에서 모든 것이 가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진리를 위해서 하는 것은 모든 것이 가하지만, 너희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하는 것은 결코 유익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술이나 담배가 크게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중독시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것들에 지배당하면 믿음생활에 많은 장애를 가져온다. 성도는 하나님 외에 자기를 얽매이게 할만한 것은 절대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성도는 오직 진리의 말씀에만 그 양심과 육체가 지배당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성도의 삶이다.
둘째, 성도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13절下) 이 말은 뒤집어 보면, 주님께서 우리 몸을 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롬14:8)고 고백하고, 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고백한다. 바울에게는 오로지 주님이 계실 뿐이지 자기 개인은 없었다. 몸도 내 몸이 아니요 주님의 몸이었고, 인생도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인생이었던 것이다. 바울은 자기가 있고 주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겼던 사람이다. 이러한 바울 앞에서 우리는 흉내만 내고 있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믿음을 발견하게 된다. 왜 우리는 바울처럼 믿지 못하는가? 항상 우리는 '나'라고 하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나'를 중심으로 행동하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나를 위해서> 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주님을 위해서>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나'라고 하는 울타리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고, 부부간에도 자기에게 관심 가져주기를 바라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때는 실망과 섭섭함에 빠지게 된다. 신앙은 이것을 벗어나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다. 성도가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라는 것은 성도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 여러분, 우리도 바울처럼 자기를 위해 살지 말고 몸의 주인되시는 주님을 위해 살아갑시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