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5:1-8
제목 :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
국경절 연휴기간 동안 고린도전서가 시작을 해서 벌써 5장이 되었습니다. 그 어떤 교회보다 뜨거운 은사와 능력을 경험했던 교회, 그럼에도 코린도라는 말자체가 음란한 난봉꾼이라는 뜻으로 사용됐을 정도로 음행과 우상숭배에 찌듯 물질 만능주의의 최고봉을 달라고 있던 교회가 바로 고린도교회였습니다. 코린도. 코리아 좀 같아 보이죠. 암튼 1장에서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이렇게 분열이 되고 4장에서 시기와 분열로 편이 갈라졌을 때 교회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를 어제 본문에서 살펴 보았습니다. 사회에서는 많은 학연 지연들이 있죠? 우리 교회는 좀 덜 하지만 지역색이 강한 교회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냥 냅두면 알아서 열심히 할텐데 라고 하시지만 분열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심각하게 발전하는 것으로 볼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온 사건입니다.
1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고린도교회에서 직접 들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했는지 그건 알수 없지만 정확한 뉘앙스는 이미 소문이 유대인들한테 파다하다는 뜻일 겁니다. 여기서 음행이라고 쓴 단어는 ‘포르네이아’는 말은 창녀와 관계를 한다는 뜻인데요 여기서 포르노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게다가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당시 이 지역이 얼마나 음란한 도시였냐면 1000명이 여 사제들이 업무가 끝나면 저녁에는 성적인 영업을 하는 음행을 서슴치 않는 그런 문화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음행은 이방인에게도 없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그 내용이 바로 ‘누가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아버지의 아내가 누구입니까? 어머니는 아닙니다. 아버지의 첩이나 계모 의붓 어머니를 뜻하는 말일 것입니다. 아마 아버지가 힘이 있는 사람이여서 여러 명의 아내를 취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버지의 아내였던 여인을 자기 아내로 삼았다. 이런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취하였다는 말은 단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으로 반복했다. 라는 뜻으로 쓰는 단어입니다. 구약의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음행을 하다가 이스라엘 모든 장자의 모든 직분을 뺏기게 됩니다. 레위기 18:8절에 보면 분명하게 “너는 네 아버지의 아내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이는 네 아버지의 하체니라” 18장에 나온 많은 성적인 범죄들을 나열한 후에 18장 29절에 보면 “이 가증한 모든 일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그런데 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이런 끔찍한 죄를 저지른 사람을 출교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냥 덮어 두었을까요? 2절에 힌트가 있는데요.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통한히 여긴다는 말은 펜다오 라는 말인데요. 팔복에서 애통하다로 쓰인 단어입니다. 이 뜻은 죽은자 앞에서 애곡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죄를 알기에 애통하며 우는 것을 말합니다. 죄 때문에 죄를 지은자도 죽은 것이고 우리도 함께 죽었습니다.라는 애통함을 가지는 마음이 바로 통한히 여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고린도 교회는 이런 사람을 통한히 여기지 않고 쫓아내지도 않고 가만히 두었을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교만해서 라고 합니다. 교만과 음행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왜 교만하면 통한이 여기지 않습니까? 왜 애통하지 않습니까? 교만은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이들이 교만할까요? 예를 들어 이 음행한 사람이 바울 파에 속했다고 칩시다. 바울파인 우리들이 최고다. 이렇게 패거리를 지으면 다른 파는 우습게 여기고 자기 패거리 안에서 스스로 높아지는 교만이 발생하게 됩니다. 더욱 더 높아지려고 노력하겠죠? 왜 그 사람을 정죄하지 않습니까? 그가 우리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람이니까 이 사람을 건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여러 아내를 데리고 있었다라는 말은 돈이 있는 권세가 있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 아들이 바울파니까 그 사람의 죄를 못 본체 덮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힘 있는 집. 그 힘 있는 집이 우리의 파니까 우리 파의 힘을 유지하기 위하여 힘이 있고 뭔가 위세를 가지고 있는 집안의 사람을 그냥 묵인해 두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파당을 지으면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들의 자존심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 조차도 무시하고 자기들의 힘을 자랑하는 것 이것을 바울은 교만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무슨 짓을 합니다. 간음한 여인처럼 힘 없는 사람들만 힘 없는 간음한 여인을 향해서는 돌을 던지지만 힘 있는 사람들의 죄는 감히 정죄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모른체 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자’ 도 나쁜 자이지만.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자기 파 사람들을 감싸고 있는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더 나쁜 것이죠? 사도 바울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3절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그러나 4절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몸으로는 에베소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영으로는 한 하나님의 아버지를 믿고 한 그리스도로 한 성령님으로 구원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의 성도임으로 바울은 판단을 이미 내렸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판단하는 것 비판하는 걸 나쁘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판단이라는 ‘크리노’라는 단어는 여기서는 법정에서 정죄하다 유죄다! 라는 뜻으로 사용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판단을 내립니다. 죄가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5절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사탄에게 내주었다는 말은 출교한다는 말입니다. 출교하면 어떻게 되죠?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없습니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교제할 수 없고 혼자만 살아가야 하는 신앙공동체에서 완전한 배척을 당하게 됩니다. 이를 육신을 멸한다 라는 고통이라고 사도 바울은 표현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진짜 원하는 것은 다음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록 육신으로는 고통을 받지만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육신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 정죄받은 걸로 말미암아 영은 하나님과의 회복될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죄를 지은 사람이 그 와중에서 내가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회개하면 하나님께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출교를 하고 정죄를 하고 판단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은 괴로움을 당하겠지만 결국 구원을 위해 그 사람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이 치리 정죄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이 교회에서 출교하면 아니 출교가 아니라 가장 낮은 단계인 수찬금지. 성찬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회개하라는 벌입니다. 이 수찬금지 또는 대표기도 정지 이런 벌만 내려도 당장 자존심이 상해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그럼 그 교인을 누가 받아줍니까? 다른 이웃교회에서 받아주겠죠? 그러니 한국교회는 이 치리의 기능이 상실되었습니다. 그 영혼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면 죄를 알려줘야 할텐데 교회가 하나님이 아닌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정죄의 기능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죄악을 당연시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8절을 보시면 “묵은 누룩으로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제가 늘 애들한테 하는 말인데요. “하나님이 손대기 전에 나한테 혼나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사도바울도 이런 마음일까요? 아주 적은 누룩이지만 온 반죽에 퍼지는 것처럼 적은 죄가 온 교회를 마비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마지막 날에 우리를 판단하실텐데. 그전에 우리가 거룩한 마음으로 온전한 상태로 교회의 온전함을 유지하고 하나님을 맞이하라는 겁니다. 성도님들 바라옵기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죄를 무시하지 않고 죄를 민감하게 여겨 회개할 줄 아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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