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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1-5-28 큐티말씀 - 우리가 받은 구원의 메카니즘(롬4:13-25) - 김도완목사님

사무간사22021.05.28 11:10조회 수 13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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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롬 4:13-25
제목: 우리가 받은 구원의 메카니즘

 

 우리가 지지난 주 레위기에서 아주 지겹게 본 것처럼 유대인들의 삶은 온통 율법으로 시작해서 율법으로 마치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삶을 살았습니다. 로마교회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세운 교회라고 했었죠? 그래서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찌라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잘못한 생각을 가지고 자기들뿐만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음식에 관한 율법과 정결의식 그리고 심지어 할례까지도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교회를 어지럽게 했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이야기 하면서 유대인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예로 들어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 얻는 방법을 말합니다. 어제 담임목사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를 들어 이미 다 설명하신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에 대한 부과 설명과 같은 내용인데요.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 우리가 받은 구원의 메카니즘을 확실히 알고 확실히 기억하고 감사하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첫째. 의롭다 칭해주는 은혜로 받게 됩니다.

 죄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죄가 없음 무죄죠? 그러나 성경에서 죄의 반대는 무죄가 아니라 ‘의롭다’ 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여기가 중국이라 다 아시겠지만 의(義)라는 한자 단어는 “양 양에 나 아”라는 한자를 쓰죠? 양 아래.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있을 때에만 의롭게 될 수 있다는 복음이 한자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 의(義)라는 단어는 굉장히 편파적인 단어인데요.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판단하시는 이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의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의라는 단어는 굉장히 편애적이고 차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불공평하다고 애기 합니다. 그런데 맞습니다. 기독교는 절대 공정하고 공평하지 않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송명희 시인이 쓴 나 라고 하는 찬양가사에나 등장하는 내용이지. 성경을 찾아보시면 하나님은 오히려 지극히 편파적이고 지극히 편애하시는 속성을 여과 없이 그대도 드러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니 어떻게 하나님이 그럴수 있어 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한번도 모든 인간을 공평하게 대우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거나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실 사람만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만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사랑하는 사람들만 결국 천국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자기들만 아는 이기적인 종교라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게 맞는 것을요?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하나님이 간섭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절대 하나님을 믿을 수 없는 그런 존재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구원은 우리가 뭔가를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거나 앞으로 할것이기에 받은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성경은 그래서 믿음으로 의를 얻었다 하지 않고 의롭게 여겼다. 이신득의[以信得義]라고 하지 않고 이신칭의[以信稱義]라고 표현합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처럼 믿음으로 의롭게 여겨준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이 왜 중요한가 하면요? 23절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이 의로 여겨지는 구원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랍니다. 그렇다면 누구도 위함입니까?  24절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아멘. 그래서 아브라함은 구원 얻은 자의 샘플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샘플로 부르셔서 구원의 방법을 알려 주신 것처럼. 아브라함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구원받은 샘플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얻는 방법을 설명해 주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또 우리가 받은 구원은
둘째. 믿음이라는 독특한 것으로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단어도 참으로 신비입니다. 어제 본문 1절에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믿음을 주셨습니다. 이거 꼭 가지고 있어 조금 있으면 이거 검사하러 올꺼야! 그래서 꼭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어 너 믿음있네. 합격~ 이리와 나와 함께 영생을 누리자 조금 과장되고 생략된게 많지만 우리가 받은 구원이 이와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그 황당한 명령에 하나님을 알지도 못한채. 이리 저리 버팅기고 아내를 팔아먹기까지 하고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으려는 실수를 저지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결국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을 믿음으로 100세에 얻은 아들을 아낌없이 바치는 경지에 오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브라함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 때문이었음을 성경은 증거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 믿음! 성경은 그 믿음 하나님이 주신 거야 그래서 자랑할게 없어. 그냥 그럴때는 감사하는 거야 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벌로나 가문으로나 사울이 훨 낫습니다. 굳이 이새의 집안이라고 생각하셨다면 다윗의 첫째 둘째 셋째 형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요? 은혜로요!! 값 없이 원인 없이 이유없이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로. 이럴 때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은혜요 구원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그 때 사용되는 도구가 바로 율법이 아닌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 누가 주셨다구요?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우리 같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도 믿음으로 인해. 비록 그 믿음이 겨자씨 만한 어디다가 자랑하기도 부끄러운 믿음이지만 그 믿음이 있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구원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 라고 하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원한 믿음이 아니였습니다. 우리가 달라고 기도했던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미리 주셔놓고 우리를 칭찬하신 것입니다. 와?~ 너 믿음있네. 잘했네. 역쉬. 이게 성경에서 우리가 받은 구원의 메카니즘입니다. 그러니 안 믿는 사람들이 보면 이해가 안되고 재수가 없고 미친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뭐야? 짜고치는 고스톱이야? 왜 나한테는 믿음안죠? 이게 어떻게 내 책임이야 하나님책임이지. 그래서 사람들은 아니 왜? 하나님은 믿음을 주시도 않고 나를 심판하시는거야?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애기합니다. 맞다니까요? 이건 공평하다 불 공평하다를 따질 때 쓰는 단어가 아니라 감사하다 안 감사하다를 따질 때 쓰는 단어라는 걸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이 없어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은 4장을 이렇게 마무리 합니다. 25절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아멘. 바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사 통과 프리패스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거 자랑할 일입니까? 아닙니다. 자랑이 아닌 찬양하고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이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은 의롭지 않은 사람들을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이 복음안에 거하시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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