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로마서 1:1-17
제목: 하나님의 복음이 시작되다.
드디어 로마서가 시작을 합니다. 성경 66권은 다 중요하지만, 그래도 굳이 성경에서 제일 중요한 책을 따지자면 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이 로마서를 꼽는데 별로 주저함이 없을 정도로 이 로마서는 아주 중요한 책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성경이 반지라고 하면 로마서는 반지에 있는 다이아몬드와 같다고 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이번 상반기 세례식에는 13명이 현재 세례교육을 받고 있는데요.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로마서를 읽어야 하는 숙제가 있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책 중의 책입니다. 읽고 계시죠? 로마서는 신약에 나오는 21편의 서신서와 13편의 바울서신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평가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다음으로 되어 있는데요. 쓰인 순서가 먼저 된 책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로마서가 제일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암튼 중요하다. 한 절 한절이 아주 소중하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을 듯 합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교회에 보내는 사도 바울의 편지의 시작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이 땅에 복음으로 오신 예수님 그 분만을 자랑하고 소개했던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이신 복음을 자랑하고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로마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첫째. 왜 사도바울은 로마에 가길 원했을까요?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무려 5번이나 로마에 있는 로마교회 성도들과 교제하길 간절히 원했고 로마에 가길 원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9절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10절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11절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12절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13절 ‘여러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왜 바울은 이렇게 까지 로마에 가길 원했을까요? 오늘 본문인 이 로마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로마교회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아시는게 도움이 될텐데요. 기억을 더듬어서 사도행전 2장에는 오순절 성령의 임재를 설명합니다.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한 제자들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 때 그곳에 있었던 많은 지역이 거론되는데요. 그 중에서 2장 10절 하반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은 열심히 유대교를 포교해서 많은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따랐음을 짐작할수 있죠? 그러니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오순절 사건 이후 여호와 하나님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에서 말하는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고 돌아가서 유대교와는 다른 로마 기독교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게 로마교회의 시초입니다. 그러니까 로마교회는 사도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서신들은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는데 이 로마교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신약의 서신서는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교회에 쓴 일종의 문제 해결서와 같은 책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전도를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소문이 들렸겠죠? 요즘 고린도교회는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에베소는 요렇데요. 저렇데요. 이래서 쓴 서신서들입니다. 그런데 로마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바울과 전혀 상관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어떻게 로마교회의 소식을 들었을까요? 사도행전 18장 2절에서 3절에 그 힌트를 좀 찾아 볼수 있습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여기에 유명한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가 등장을 합니다. 원래 이들은 로마에 살다가 글라우디오 황제가 시민권이 없는 유대인들은 다 로마 떠나라는 칙령에 따라 지금 이곳에 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로마교회 성도들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텐트 메어커로 그들과 생업이 같다는 이유로 일년 반 정도를 함께 지내게 되는데요. 그 때 로마교회의 소식을 들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해 율법주의가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유대인들이 빠지고 이방인들로만 채워진 로마교회 였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선행이 뭐가 중요해 라고 생각하는 이원론적인 수 많은 헬라 그리스문화와 황제숭배 사상과 같은 문제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당시 땅끝은 스페인입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가 건강하고 올바른 복음으로 세워져서 그 다음 땅 끝까지 세계 선교의 중심으로 세우고자 그토록 로마 교회에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내용이 다른 서신서와는 조금 다른데요. 아직 가보지 못한 교회였기에 실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보다는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기초부터 시작하여 고급까지 단계별로 잘 정리해서 보냈습니다. 그것도 이방인들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의 기초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공으로 설명해야 했기에 로마교회가 꼭 알아야 할 신앙의 정수를 요약해 소개합니다. 이러한 배경에 의해서 지금 우리도 그 덕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합니다.
꼭 가고 싶었지만 갈수 없었던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편지로 담아서 소개합니다. 1절에서 그 첫 단어가 바로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우리에게는 복음이라는 단어가 좋은 소식 굿 뉴스로 생각되지만 복음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유앙겔리온이라는 말인데요. 단어로만 보자면. 예전 황제가 서거하고 새로운 황제가 시작됐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영화에 보면 경비병들이 팡빠레를 불면서 ~ 새로운 황제 누가 누가 즉위를 했다. 이런 말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복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헬라인들인 이방인 로마교회에게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한 단어가 바로 이 복음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동안 이 땅은 악한 사탄 마귀가 지배했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왕 새로운 백성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2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런데 이 복음은 어디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그동안 창세기에 나와 있는 원시복음에서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그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아들에 대해서 계속 설명하는데요. 3절 그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절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이 아들로 선포되었는데 이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5절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아 성도가 되고 사도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모든 복음의 중심은 예수님을 향합니다. 사실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모든 신구약 예수님이 중심주제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죄의 종이 되어 죄를 왕으로 모시고 살았었는데 이제는 유앙겔리온 복음이 시작되어 죄가 우리의 주인이 아닌 예수님으로 인하여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이 시작되었고 그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은 부끄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복음을 쓸데없는 것으로 여기고 살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이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충분히 그럴수 있죠? 지금 이 시대에 이 곳에서 예수 믿는게 얼마나 축복이고 행복한 일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에휴 뭐 이런 반응이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2000년 전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는 이단아였고 헬라인에게는 황제를 배신한 국가 반란범 이었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국가에 해가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핍박을 박아야 했고 십자가에 못박히거나 짐승의 밥이 되어야 하는 그런 운명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나 교회다녀 나 예수님을 믿었고 구주로 고백했어 나 세례받은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것이 쉬었을 까요? 아마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선택하면 국가를 버려야 하고 가족을 버려야 하고 직업과 재산을 버리고 카타콤 같은 지하 감옥에 살았어야 하는 생명을 걸고 믿는 것이 바로 기독교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 능력이 우리를 살리는 능력으로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사 흑음에 나라에서 하나님이 나라로 우리를 옮기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요 이것이 복음입니다. 앞으로 계속되는 로마서를 통해서 같은 이방인의 입장에서 우리를 불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그 복음 그 구원을 자랑하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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