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레25:1-17
제목: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
첫째, 안식은 땅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존재한다.
안식년이나 희년이나 모두 땅을 쉬게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2절, 4절, 11절) 그러나 이 말씀들은 땅을 위한 것인가? 아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막2:27)처럼, 안식년과 희년도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땅”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안식년과 희년의 대상이요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6일간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쉬신 것은 너무 피곤하셨기 때문인가? 아니다. “사람”을 위해서이다. 창조된 사람에게 에덴의 풍성함을 누리게 하시려고 그러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안식년과 희년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에덴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다. 가나안땅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영적 에덴이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에덴>을 누려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쉼은 단순히 육체적 쉼이 목적이 되면 안되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성도가 누려야 할 안식이다.
둘째, 안식의 목적은 참된 자유와 회복을 누리는 것이다.
희년은 안식년의 확장버전이다. 희년에는 ①빚진 자와 노예들에게 자유를 선포한다. 사람이 노예가 되는 이유는 대부분 빚을 져서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희년은 빚을 면제시켜주고 집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그러니 빚진 자들과 노예된 자들에게 희년은 <자유와 회복>을 의미한다. ②토지와 주택의 소유를 원상태로 회복시킨다. 안식년에는 빚을 면제시켜 주는데, 희년은 더 확장해서 팔았던 집과 땅을 다시 돌려받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해서 어쩔수 없이 집과 땅을 판 사람은 희년만 기다리게 되겠죠? 이들에게 있어서 희년은 <회복>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도의 안식은 곧 <자유와 회복>을 누리는 것이다. 사실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았던 우리에게는 어떤 안식도 있을 수 없고, 어떤 희망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한 사람에게는 희년이 선포되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는 영원히 벗어날수 없는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었고,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되는 자유와 회복은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삶의 기회를 의미한다. 그것이 성도가 누리는 안식이다.
셋째, 안식은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임을 보여준다.
5절은 “안식년에 난 소출은 사람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희년에도 동일하다. 일하지 않았지만 자라난 밭의 소출을 먹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안식년과 희년의 의미는 이것이다. "우리는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이 땅의 주인인 하나님이 누구나 먹여 살려 주십니다. 땅 때문에, 농사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은 자기 힘과 노력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은혜로 사는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안식년과 희년의 영적 의미이다. 그래서 성경은 희년을 은혜의 해라고 말씀한다.(사61:2, 눅4:19) 왜 희년이 은혜의 해인가? <인간의 죄로 인해 깨어진 안식이 하나님의 희생 덕분에 회복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안식년과 희년은 빚진 자들이 면제, 즉 탕감을 받고 자유케 되는 날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바로 우리의 노동이 아닌, 하나님의 노동으로, 즉 우리의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하여 죄가 면제되어 안식, 즉 자유와 회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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